*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부여 김시습 영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6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9. 30. 22:41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선생의 초상화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이며 조선 전기의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금오신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그의 저작은 다채롭다고 할 만큼 조선 전기의 사상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교·불교 관계의 논문들을 남기고 있으며 15권이 넘는 분량의 한시를 남겼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려 놓은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사대부상 중의 하나로,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야인의 옷차림에 패랭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옅은 살색으로 맑게 처리하였고, 윤곽선과 눈·코·입 등은 옅은 갈색으로 그렸다. 의복은 옅은 홍색인데 필요한 부분만 약간 짙은 갈색으로 묘사했다. 이로써 얼굴과 의복을 옅은 살색과 그보다 약간 짙은 갈색을 대비시켜 조화있는 화면을 만들었다. 수염은 회색 바탕에 검은 선으로 섬세하게 그려, 당시 초상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는 현재 몇 점 밖에 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도 원본을 본 떠 그린 것이거나 덧칠을 한 것이 많은데 이 초상화는 원본 그대로 남아있어 귀중한 작품이다. 그의 저서인『매월당집』에 의하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이 그 자화상인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 눈에서 느껴지는 총명한 기운은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전하는 듯하여 초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선생(1435∼1439)의 초상화이다. 선생은 세조(世祖)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로서 말년에 무량사(無量寺)에 은거하다가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야복 차림에 패랭이형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얼굴 윤곽선과 모습을 옅은 갈색으로 대비시켜 조화있는 화면을 구성했다. 수염은 회색 바탕에 검은 선으로 섬세하게 그려 조선초기 초상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초상화는 선생의 청년기와 노년기의 모습 두 종류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중 어느때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조선 초기(朝鮮 初期)의 초상화(肖像畵)는 현재 수폭밖에 전해오지 않을뿐 아니라 그것도 이모(移模)나 가채(加彩)가 심한데 비해, 이 김시습 초상화는 원본 그대로 초기의 화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매월당집)에 의하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상의 자화상(自畵像)을 그렸다. 하지만 이 상은 자화상으로 단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자화상 여부를 불문하고 이 초상화는 김시습이란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약간 찌푸린 눈매, 꼭다문 입술, 눈의 총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초상예술의 진수(眞髓)라 할 '전신(傳神)'이 탁월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무량사 소장 김시습 영정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640000,34&queryText=((V_KDCD=21))%20<and>(((V_NO%20>=64)<and>(V_NO%20<=%2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