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101

함평 자형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자형정이다. 찾아 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지역 주민에게 물어 겨우 찾아갔다. 확실하지 안지만 파란 대문 우측으로 올라 가보란다. 정면 보이는 골목으로 올라 간다. 우측 언덕 위로 보인다. 광산 김씨 김상순 형제가 지은 정자라네여. 문화재청에는 아직도 문화재 설명에 준비 중이네여.

함평이규행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0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이규행 가옥이다. 문화재청 홈피에는 주소가 '나산면 초포리 657-2'로 되어 있는데 '657-1'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찾아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왼쪽 골목으로 간다. 녹슬은 파란 대문집이다. 대문이 잠겨 있어 대문 아래로 사진 촬영에 실례를 하였다. 문화재 안내판을 대문 밖에 설치했으면 한다. 대문 안에 있어 볼 수가 없다.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 자리잡은 이 가옥은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충인(1526∼1597)이 지었다고 한다.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안채 건물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17∼18세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춘 짜임새 있는 양반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7칸..

함평이건풍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이건풍 가옥이다. 초포리에 처음 터를 잡은 함평이씨의 종가이다. 기록이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여러 차례 고쳐지어 옛모습을 잃긴 하였으나 목재의 규모나 나무를 다듬은 기법, 높은 기단 등으로 보아 오래된 집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건물은 안채와 사당, 헛간채로 구성 되어 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사랑채 2동이 더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ㄷ’자형 평면 구조로 이 지역의 ‘ㅡ’자형 구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중앙으로 2칸의 대청이 넓게 드려져 있다. 오른쪽으로는 안광, 왼쪽으로는 안방과 정지로 이어진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헛간채는 1944년 지었다.(출처 : 현장 안내판) 2004..

함평진양리화동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230호)

2번에 주차하고 주민에게 물어 본 후 걸어서 찾아 갔다. 사진 촬영하려면 걸어서 가란다. 주민 덕분에 쉽게 찾았다. 언덕길로 올라간다. 큰 소나무 왼편으로 올라간다. 안내판이 보인다. 함평영화학교가 보인다. 뒤돌아오면서 사진을... 사진 중앙쪽으로 올라간다. 금산리 고분이 입지하는 구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해발 40m 내외의 구릉은 다시 높아져 해발 86m의 야산을 이루는데 화동은 야산의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고분은 마을의 서쪽에 있는 산기슭의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해발 86m의 야산이 완경사를 이루며 남쪽으로 내려오는 곳으로 동쪽으로는 함평천 주변에 형성된 평지가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서해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성 산지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2기의 고분이 동서로 2∼3m 정도의 간격을 두..

함평대덕리고양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231호)

대덕리고양고분군를 찾는데 좀 힘이 들었다. 지도에 위치 표시도 좀 애매하다. 본인은 시계방향으로 갔다. 길도 매우 좁다. 결론부터 말하면 1호분은 1번, 2호분은 2번 위치에 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여 무작정 3번 위치에 주차하고 찾기로 했다. 머리 숲속에 안내판이 보인다. 1호분이다. 되돌아 나오면서... 2호분을 찾기 위해 4번 위치에 주차하고 되돌아 가는 중이다. 2호분은 사진 중앙쯤에 있다. 4번 위치이다. 오른쪽길로 올라간다. 풀이 우거져서 좀 그렇다. 안내판이 보인다. 뒤돌아본 모습이다. 고양 마을 서쪽에 있는 중봉(해발 134.5m)은 남동쪽으로 내려오면서 해발 99m의 산을 형성하고 점차 낮아지는데 해발 50m 정도까지는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그 이하로는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동쪽으..

영파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168호)

사진 중앙에 영파정이 보인다. 주변 도로가 넓어 주차 가능하다. 함평천에 멋있는 왕버들 두그루가 있다. 오른쪽 나무가 100년된 왕버들이다. 100년된 보호수 왕버들 세조 1년(1455)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영파정 이안(1414∼?)이 자신의 호를 따 지은 건물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1450∼1460년대로 추정한다. 그 후 영파정은 함풍 이씨 가문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유재란(1597) 중에 불에 타 없어진 후 영수정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으며, 1820∼1821년 사이에 군수 권복과 김상직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지었다. 그 뒤 고종 20년(1883) 크게 보수하고, 1966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함평척화비(전라남도 문화재자료176호)

함평 척화비는 함평읍사무소 북측에 있는 함평공원에 있다. 읍사무소나 함평장례예식장 근처에 주차한다. 함평중앙교회가 있는 경사진 길로 올라 간다. 척화비는 끝 무렵에 있다. 기미 3.1 의거 열사 기념비 함평천 건너 함평중학교와 함평교육청이 보인다. 나라와 겨레위한 얼의 탑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끌면서,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더욱 강력히 심어주고자 서울 및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비의 규모나 크기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그 내용만은 똑같이 쓰도록 하였다. 함평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에 비몸의 윗변을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들이 ..

함평이재혁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250호)

누군가가 주차의 어려움을 말했는데 길가에 주차가능해여.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실례를 했네여. 이재혁 가옥은 정성을 들여 잘 지어진 사랑채로 외부재료나 형식으로 보아 근대적 성격을 띤 주거건축이다. 현재 안채는 없어지고 외부공간인 정원과 더불어 사랑채와 문간채만 남아 있다. 상량문에 의한 사랑채의 건립 연대는 1917년으로 확인되었다. 외부재료를 근대적 재료인 유리창으로 마감한 것이 흠이지만, 전통 한옥이 근대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 단계의 가옥으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고, “ㄱ”자형 사랑채 건립은 이 지역에서 매우 보기 드문 예이다.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 은거(1898년경)와 관련한 장소로서의 의미도 있는 곳이다. 이 가옥은 함평이씨 이동범(李東範, 1869∼1940)이 20세기 초반..

구 함평성당(국가등록문화재)

1952년 건립 이 건물은 194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북한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1년에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의 지원으로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1952년에 완공되었다. 1층에는 성당의 교육 및 사회적 공간으로, 2층에는 순수한 미사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미사공간은 내부 공간의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정면 중앙에 솟아있는 8각 종탑이 특징적이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