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 691

함평 수벽사& 임천정사

임천정사 : 파평 윤씨의 제실. 입향조 윤길이 지었다. 한때 인재양성 공간으로 쓰였다 수벽사 : 느티나무 숲 물레방아 옆에 자리 잡은 수벽사는 고려시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쌓은 윤관(?∼1111년)장군을 모신 사당 고려국 한림학사 둔옹 퍄평 윤선생 신도비 퍄평윤씨 대언공 장방손 한림공파 유래비 앞에는 해보면 상곡리 635번지에 모평 마을 숲이 있다. 신천강씨 열녀비 :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두 팔이 잘리면서까지 남편 윤해의 죽음을 막으려했던 강씨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각. 충노비 : 윤해와 신천강씨 부인이 죽임을 당하자 이 소식을 들은 장남 17살 청립은 노비였던 도생과 사월에게 4살짜리 동생(정립)을 부탁하고 전쟁터로 달려 나갔으나, 청립도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도생과 사월은..

함평 사산사

사산사는 함평 해보천이 고막원천으로 합류하는 곳인 나산면 초포리에 있는데 함평이씨 시조를 추모하는 곳이다. 함평이씨 시조는 고려 건국에 참여하고 신무위대장군에 오른‘함풍군 이언’이다. 이 마을은 함평이씨 집성촌이며, 조선 초기 건축형태로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인함평‘이건풍가옥’이 있다. 건물이 오래되어 보이는데 왜 문화재로 등록이 안 되었는지.... 근처에 있는 이규행 가옥을 찾다가 우연히 가본 곳이다.

함평예덕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제55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예덕리 고분군이다. 예덕 저수지와 용암 저수지 사이에 있는 연정재에서 동으로 흘러내린 낮은 구릉에 위치한 무덤들이다. 현재 12기의 무덤이 남아있으나 10여 년전 개간 당시 많은 무덤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무덤들은 그 배치상태에 있어서 다른 무덤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남북 또는 동서로 축을 두고 3개씩 무리지어 가지런히 붙어 있는데, 이러한 배치상태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전방후원무덤 형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주변에서는 대형항아리관조각들이 수습되어 이 무덤들을 4∼5세기에 걸치는 백제의 독무덤(옹관묘)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한 학술조사가 없어 무덤의 형태나 내부구조에 대한 확실한 정보는 알 수 없다. 함평 예덕리 무덤들은 영산강 하류의 독무덤 분포지역에 속하는 곳..

함평예덕리신덕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제143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예덕리 신덕 고분군이다. 문화재청에 주소가 ' 예덕리 산176번지'로 되어 있는데 ' 예덕리 산177번지'에 있다. 멀리 고분이 보인다. 낮은 평지성 구릉에 분포하고 있는 무덤들이다. 남북으로 배치된 2기의 무덤 중 남쪽의 대형 무덤은 봉토가 앞쪽이 네모난 형태이고 뒤가 둥근 전방후원 형태이고 북쪽의 무덤은 원형이다. 전방후원 형태의 무덤 구조는 굴식(횡혈식)으로 돌방(현실)의 4면은 아래에 넓은 판돌을 세우고 위는 네모진 깬돌로 촘촘하게 쌓은 후 사이에 작은 깬돌을 끼운 맞조립식으로 세웠다. 천정은 2장의 판돌로 덮었으며 입구는 문비석으로 막고 그 밖을 막음돌로 쌓았다. 출토된 유물은 다량의 토기와 철기류, 철판이 있는데 백제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예덕리 신덕무덤들은 삼국시대..

함평 자형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자형정이다. 찾아 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지역 주민에게 물어 겨우 찾아갔다. 확실하지 안지만 파란 대문 우측으로 올라 가보란다. 정면 보이는 골목으로 올라 간다. 우측 언덕 위로 보인다. 광산 김씨 김상순 형제가 지은 정자라네여. 문화재청에는 아직도 문화재 설명에 준비 중이네여.

팔열부정각(전라남도 기념물 제8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팔열부정각이다. 처음에는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라 착각했다. 문화재청에 주소가 '월야면 월악리 155-1번지'로 되어 있는데 '월야면 월야리 155-1번지'이네여. 팔열부정각 옆에 있는 노거수. 여덟 분(정함일의 부인 이씨와 그의 딸 정씨·정경득의 부인 박씨·정희득의 부인 이씨·정운길의 부인 오씨·정주일의 부인 이씨·정절의 부인 김씨·정호인의 부인 이씨)의 열녀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각이다. 이들은 선조 30년(1592) 정유재란 때 왜군들과 맞서 싸운 남편들의 전사소식을 듣고 피난을 가다 왜군들의 추격을 받고 칠산 앞바다에 투신함으로서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숙종 7년(1681) 함평에 정각을 세우고 순절지인 묵방포에는 순절비를 세웠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

함평용월리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158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용월리 지석묘군이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전라남도 함평에 있는 이 고인돌은 바둑판식으로 구릉 정상부에 16기가 모여 있다. 덮개돌의 길이가 5.25m, 너비 3.4m인 가장 큰 고인돌을 중심으로 길이 3m 이상의 비교적 큰 규모의 고인돌이 모여 있다. 또 16기 중 12기에서는 덮개돌을 지탱하는 높이 0.4∼0.5m의 받침돌이 확인되는데, 1기의 고인돌에 적게는 3개에서..

함평이규행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0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이규행 가옥이다. 문화재청 홈피에는 주소가 '나산면 초포리 657-2'로 되어 있는데 '657-1'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찾아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왼쪽 골목으로 간다. 녹슬은 파란 대문집이다. 대문이 잠겨 있어 대문 아래로 사진 촬영에 실례를 하였다. 문화재 안내판을 대문 밖에 설치했으면 한다. 대문 안에 있어 볼 수가 없다.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 자리잡은 이 가옥은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충인(1526∼1597)이 지었다고 한다.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안채 건물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17∼18세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문간채, 행랑채, 사랑채 등을 고루 갖춘 짜임새 있는 양반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7칸..

함평이건풍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이건풍 가옥이다. 초포리에 처음 터를 잡은 함평이씨의 종가이다. 기록이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여러 차례 고쳐지어 옛모습을 잃긴 하였으나 목재의 규모나 나무를 다듬은 기법, 높은 기단 등으로 보아 오래된 집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건물은 안채와 사당, 헛간채로 구성 되어 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사랑채 2동이 더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ㄷ’자형 평면 구조로 이 지역의 ‘ㅡ’자형 구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중앙으로 2칸의 대청이 넓게 드려져 있다. 오른쪽으로는 안광, 왼쪽으로는 안방과 정지로 이어진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헛간채는 1944년 지었다.(출처 : 현장 안내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