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예산의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빈약한 모습이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년(1809)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재위 1724∼1776)가 내려 주신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수령(樹齡)은 2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4.5m, 가슴높이의 둘레가 4.77m이다. 수관폭은 12m 정도로 발달해 있다. 백송은 중국원산의 소나무과의 일종인데 이 백송은 용궁리 동네에 살고 있는 김씨의 선조 묘지 앞에 서 있다. 수고 14.5m쯤 되고 원래 지표면 부근에서 줄기가 3갈래로 갈라져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만 살아남아 있다. 이 나무가 이곳에 자라잡게된 유래에 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는 말이 있다. 즉 조선 순조(純祖) 9년 10월(1809년)에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선생이 나이 24세때 청나라 연경(燕京)에서 돌아오면서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金興慶)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 한다. 이때 그는 그의 부친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이 연경으로 갈 때 수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백송의 묘목을 가지고 온 것인가 아니면 종자를 가져다 번식시킨 것이냐 하는 거다. 백송은 생리로 보아 묘목으로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종자를 가져다가 묘목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백송은 수세가 약한 편이라 생육공간은 넓히는 등 보호관리는 잘 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백송은 중국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300년 이상된 백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고 나이가 많은 백송은 전국적으로 몇 그루 안된다. 50년 미만의 백송은 많이 있다. 서울 조계사와 헌법재판소, 이천 백사면 신대리에 천연기념물의 백송이 자라고있다.
백송 뒤로 김정희의 고조할아버지 묘소가 보인다.
아래부분은 많은 수술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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