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명승, 사적

창덕궁(사적122호) 1

천지연미소바위 2012. 2. 8. 21:22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당시 종묘·사직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만들었다.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주로 정치를 하고 백성을 돌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크게 이용되지 않은 듯 하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고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화재를 입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때에 다시 지어지면서 대체로 원래의 궁궐 규모를 잃지 않고 유지되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60여 종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3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들도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을 비롯한 침전에 불이 나서 희정당 등 19동의 건물이 다 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가 대조전을 다시 짓고, 강령전을 헐어서 희정당을 다시 짓는 등 경복궁을 헐어 창덕궁의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 중 궁궐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정문인 돈화문으로 광해군 때 지은 것이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로, 1997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창덕궁(비원포함) → 창덕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창덕궁< 昌德宮 >은 조선< 朝鮮 >태종< 太宗 >5년(1405) 이궁< 離宮 >으로 지어진 궁궐로서, 그 뒤 여러 차례 보완< 補完 >공사< 工事 >가 계속되어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 <敦化門 >이 건립되었고 세조< 世祖 >9년(1463)에는 약 62,000평이던 후원< 後園 >을 넓혀 총 150,000여 평에 달하는 규모가 되었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때 소실< 燒失 >된 것을 선조< 宣祖 >40년(1607)에 중건< 重建 >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光海君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 仁祖反正 >때 인정전 <仁政殿 >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 殿閣 >이 소실되어 인조 25년(1647)에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후에도 여러 번 화재< 火災 >가 있었으며, 1917년에는 내전< 內殿 >이 소실되어 경복궁 <景福宮 >의 교태전< 交泰殿 >·강녕전< 康寧殿 >·동서행각< 東西行閣 >등 많은 건물을 이건하였다. 창덕궁< 昌德宮 >은 광해군 때 정궁< 正宮 >으로 쓰게 된 뒤 약 300년 동안 역대< 歷代 >제왕< 帝王 >이 정사< 政事 >를 보살펴 온 곳이다. 현재 인정전 <仁政殿 >과 그 주위의 회랑< 回廊 >을 비롯하여 대조전 <大造殿 >과 낙선재< 樂善齋 >등 궁내< 宮內 >의 주요 전각< 殿閣 >은 창덕궁< 昌德宮 >내에 13동, 비원< 秘苑 >내에 28동이 있다. 없어진 건물은 인정문 <仁政門 >앞의 회랑< 回廊 >, 인정전과 대조전의 부속 건물, 낙선재 앞 건물 등 극히 작은 부분으로 장중< 莊重 >한 왕궁< 王宮 >의 규모< 規模 >가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의 규모는 131,781평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궁궐< 宮闕 >후원인 비원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고궁 중 하나이다. 비원< 秘苑 >은 태종< 太宗 >5년(1405) 창덕궁< 昌德宮 >을 창건< 創建 >할 때 후원< 後園 >으로 조성< 造成 >되었으며 창경궁 <昌慶宮 >과도 통하도록 되어 있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때 대부분의 정자가 소실되고 지금 남아 있는 정자와 전각< 殿閣 >들은 인조 원년(1623) 이후 역대< 歷代 >제왕< 帝王 >들에 의해 개수< 改修 >·증축< 增築 >된 것이다. 이곳에는 각종< 各種 >희귀< 稀貴 >한 수목< 樹木 >이 우거져 있으며 많은 건물과 어정< 御井 >·연못 등이 있다. 역대< 歷代 >제왕< 帝王 >과 왕비< 王妃 >들은 이곳에서 여가< 餘暇 >를 즐기고 심신< 心身 >을 수양< 修養 >하거나 학문< 學文 >도 닦았으며 연회< 宴會 >를 베풀기도 하였다. 비원< 秘苑 >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傳統 >조원시설< 造苑施設 >로 자연적< 自然的 >인 지형< 地形 >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 造化 >있게 건물< 建物 >을 배치한 왕궁< 王宮 >의 후원< 後園 >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덕궁(사적122호)은 너무 유명하고 볼 것도 많아 여러차례로 나누어 올릴 예정이다.

 

보물383인 돈화문

 

 

 

 

 

 

천연기념물472호 회화나무군

 

 

 

진선문

 

 

숙장문

 

 

보물813인 인정문

 

 

 

국보225호인 인정전

 

 

 

숙장문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1220000,11&queryText=(`창덕궁`)<in>z_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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