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중요-시도 민속문화재

당진 남이흥장군 일가유품(중요민속문화재2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3. 8. 21:16

  남이흥(1576∼1627)은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 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유품에는 사슴의 가죽으로 만들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옷 1벌과 많이 훼손되어 형태를 분별하기 어렵지만 정묘호란시 안주성에서 남이흥 장군 순국 소식을 들은 인조(仁祖) 임금은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 장례시. 장례에 참여하여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며 인조(仁祖) 임금이 입었던 곤룡포를 친히 벗어 장군의 관(棺)위에 덮어 주었다고 전하는 곤룡포 1벌, 그리고 상아·나무·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 가족들의 호패 7점이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서(古書), 서한(書翰), 영정, 교지 등 보존되고 있는 500여 점의 그의 유품들은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2004년 9월 25일 중요민속자료 제21호 '남이흥장군유품'에서 '남이흥장군일가유품'으로 명칭이 변경됨. (2004년 2월 관계 전문가 추가지정조사 실시 결과 지정명칭변경과 고문서 13점, 영정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세부유물을 추가 지정함.) 모충관(慕忠館)은 조선시대 무장(武將)이며 충신(忠臣)인 충장공(忠壯公) 남이흥 장군의 유품인 곤룡포(袞龍袍)·녹구(鹿구)·호패(號牌)·서한(書翰)·고서(古書)·의류(衣類)·영정(影幀)·교지(敎旨)·천장(遷葬) 때의 관(棺)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장군의 유품 중 녹구는 인조(仁祖) 5년(1627)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평안병사(平安兵使)로 발탁되어 안주(安州)에 있을 때 호신용(護身用)으로 입던 것이고, 곤룡포는 정묘호란시 안주성에서 남이흥 장군 전사 소식을 들은 인조(仁祖)임금은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명 하고 장례시, 장례에 참여하여 눈물을 흘리며애도하며 인조(仁祖) 임금이 입었던 곤룡포를 친히 벗어 장군의 관(棺)위에 덮어 준것이라고 한다. 보존상태는 좋지 않지만 섬세한 솜씨로 미루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호패는 장군호패와 가족호패 6개가 남아 있다. 이밖에 500여 점의 유품들이 보존되어 있다.(출처 : 문화재청)

 

당진 대호지면에 있는 신동지 상류에 있다.

유물은 충장사 모충관에 보관하여 직접 보진 못했다. 그래서 문화재청에서...

 

 

 

(유물 사진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남이흥장군 유품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210000,34&queryText=(`남이흥`)<in>z_title

 

 

 

  충남 당진군 충장사에 소장된 이 초상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7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현존상태가 양호한 남이흥의 공신도상(功臣圖像)이다. 이 초상은 보수를 했으나 옛 표구와 술 까지 견지하고 있으며, 말아두었을 때 꺾인 부분들과 안면의 찢긴 부분이 있으나 화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남이흥 초상은 정춘신 초상과 더불어 진부공신상의 대표적인 공신상으로 화풍이나 양식상 시대적 특징이 선명하며, 정충신 초상이 보다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영정사진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남이흥장군 영정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210600,34&queryText=(`남이흥`)<in>z_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