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십청헌(十淸軒) 김세필(1473∼1533)과 그 자손들의 묘이다. 연산군 1년(1495)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사헌부 지평에 올랐으나,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난 뒤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중종 15년(1520) 중국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해 겨울 기묘사화가 일어나 중종이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렸는데 이를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경기도 유춘역으로 귀양갔다. 중종 17년(1522)에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공자당(工字堂)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생을 마쳤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이조판서의 벼슬을 내렸으며 충주의 팔봉서원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 묘역에는 김세필 묘를 비롯하여 1400년부터 조선 후기 사이에 만들어진 그 자손들의 묘가 놓여 있다.(출처 : 문화재청)
맨 위에 김세필 어머니 묘가 있고, 그 아래에 김세필 묘, 아들 김저 묘가 차례로 있다.
모현에서 출발하여 내비 안내에 따라 갔는데 디지털게이트라는 다리쪽으로 안내한다. 500m쯤에 있다고 안내하는데 옹벽으로 갈 수 없고. 주민에게 물어 보니 앞애 있는 야산 넘어에 있단다.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와 찾을 수 밖에....
결론부터 말하면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대청초등학교 동편에 있다. 김세필 묘역에서 바라본 대청초등학교.
대청초등학교 아래에 있는 사당.
오른쪽으로 보이는 옹벽위에 대청초등학교가 있다.
묘역 맨앞에 있는 신도비. 혹시 김세필 신도비가 아닌지....
중간쯤에 있는 김확(?)묘인데 2명의 부인과 함께 3기가 있다. 그런데 어느것이 김확묘인지는 모르겠다. 위로 김세필의 아들 김저와 그위로 김세필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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