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기타

고성 건봉사 2

천지연미소바위 2012. 10. 1. 21:26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법흥왕 7년(520) 때 아도화상이 지은 절이다. 처음에는 ‘원각사’라고 불렀으나, 이 절의 서쪽에 새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건(乾)과 봉(鳳)을 합쳐 ‘건봉사’로 바뀌게 되었다. 경덕왕 17년(758)에 발징화상이 고쳐 지었고,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나옹화상이 다시 고쳤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사명대사가 승병을 모집하였는데 모두 6,000여 명이 모여서 왜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타 지금은 옛 절터만 남아있다. 건봉사는 전국(全國) 4대사찰(四大寺刹)의 하나로 월정사(月精寺)와 더불어 전국 31개 사찰의 본산(本山)으로 승려수만 700여 명을 헤아리는 큰 사찰이었다 한다. 이 절은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7년(520)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금강산(金剛山) 남쪽 명당을 찾아 이곳에 당시 원각사(圓覺寺)를 건립(建立)하였다. 그 뒤 경덕왕(景德王) 17년(758)에 발징화상(發懲和尙)이 중수(重修)하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7년(1358)에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봉사라 이름을 바꾼 것은 이 절의 서쪽에 새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건(乾)과 봉(鳳)을 합쳐 지은 이름이다.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선조(宣祖)의 명(命)을 받들어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 겸(兼) 의병대장(義兵大將)의 직책을 받게 되자 그 제자인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승병(僧兵)을 모집하였는데 모두 6,000여 명의 승병이 이곳에 합집, 왜적(倭敵)을 무찔렀다 한다. 한국전쟁으로 불타 지금은 옛 절터만 남아있다.(출처 : 문화재청)

 

 

건봉사(http://www.geonbongsa.org/maha/index.html)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현재 사찰이 복원 중이다. 문화재청 내용에 '절터만 남아 있다' 라고 되어있지만 , 대웅전, 팔상전, 종각, 염불만일원 등은 복원되었고 극락전은 복원 추진 중 이네요.

 

 

 

건봉사는 이 언덕 넘어가면 있다.

 

 

 

 

 

가우언도 문화재자료35호인 건봉사 불이문이 보인다.

 

 

 

 

 

 

 

 

보물1336호인 건봉사 능파교. 이 다리를 건너가면 대웅전이 있다.

 

 

 

 

 

 

건봉사 대웅전.

 

 

이 건물안에 석가모니 사리가 어둠속에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