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공주 충절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7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3. 21. 13:43

  이명성과 이명덕(1373∼1444) 형제의 학행을 기념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이명성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인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이명덕은 고려말∼조선초 문신으로 호는 사봉이다. 예문춘추관, 좌부대언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 많은 벼슬을 지냈다. 70세에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후에 우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원래는 성종 때 충남 연기군 명탄에 세웠던 충절사라는 사당인데, 명탄서원이라고도 불렸다. 선조 18년(1585)에 서원 이름을 하사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철종 2년(1851)에 공주의 유생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 새로 지은 것이다. 고종 5년(1868)에는 잠시 철폐되기도 하였다. 1956년 사우 충절사를 다시 지었는데, 이곳에는 선생 2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985년에 묘정비와 강당, 고직사 건물을 지었고 서원 뒤편에는 이명덕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곳은 공산 이씨 이명성(李明誠)과 이명덕((李明德), 1374∼1444) 형제의 학행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다. 원래 성종 때 연기군 명탄(鳴灘)에 건립되었던 사당으로 충절사라 불렀다. 선조(宣祖) 18년(1585)에 서원 이름을 하사(下賜)받았다고 하며, 임진왜란(1592)으로 소실되자 공주 유생들이 철종(哲宗) 2년(1851)에 현재 위치에 새로 세웠다. 이명성은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고 이명덕은 조선초기의 4대왕을 모셨던 명신이다. 명탄 서원(鳴灘書院)이라고도 불렸고,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되었다. 1956년에 재건한 사우 충절사(忠節祠)에는 두 선생의 위폐가 모셔져 있으며, 1985년에 건립한 묘정비와 강당, 고직사 건물이 있다. 서원 뒷편에 이명덕의 묘와 묘비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두 형제가 아이러니하게 다른 길을 갔네요. 이명성은 고려가 망하는 것을 개탄하여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고려의 충신이고, 이명덕은 조선초에 여러 왕을 모신 조선의 충신이다. 어느분을 본받아야 하는지 감이 안잡힙니다.

 

 

 

 

 

충절사는 금강 북측 신공주대교 근처에 있다. 우측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우측길로 올라가면 주차공간이 있다.

 

 

앞에 있는 건물이 명탄서원이고 충절사는 그 뒷편에 있다.

 

 

 

 

충절사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0700000,34&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