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국보,보물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보물125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3. 27. 20:59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四天國)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위치하고 있다. 동방 지국천왕은 호화롭게 장식된 보관을 쓰고 얼굴은 분노한 표정을 하였으며, 복장은 갑옷과 천의(天衣)를 입고 있다. 건장한 체구에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왼손은 칼끝을 받쳐들고 있다. 북방 다문천왕은 높직한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띤 인자한 모습으로 선비형의 눈썹과 긴 턱수염에서 부드러운 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비파를 들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힘에 겨운 듯 고통스러워 하는 악귀가 왼쪽다리를 받쳐들고 있다. 남방 증장천왕은 굳게 다문 입과 함께 근엄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고 있으며, 왼손은 무엇인가 쥐고있는 듯한 자세만을 취하고 있다. 당당해 보이는 신체는 수호신으로서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은 부릅뜬 눈에 입을 벌리고 소리지르는 듯한 위엄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는 깃발을 잡고 왼손에는 무엇인가 들고 있었던 모습인데 보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사천왕상 대부분이 중국식 갑옷에 각기 다른 상징물을 들고 있으며 발 밑에는 악귀를 밟는 형태상의 특징을 갖는다. 또한 무장한 분노상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보관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귓바퀴를 돌아 어깨 위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자비로운 보살상의 모습이 추가되고 있다. 보림사의 사천왕상은 이러한 특성을 가장 앞서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적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조성시기는 천왕문에 걸린 목판과 『보림사중창불사기록』에 의하여 중종 10년(1515)에 조성되고 이후 2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림사 사천왕상은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사천왕(四天王)이란 『불설장아함경(佛說長阿含經)』에서 처음 나타난 인도의 재래신으로 수미산에 거주하면서 동, 서, 남, 북의 사천국(四天國)을 다스리는 왕들인데 대승불교에서 불법의 수호신으로 강조되어왔다. 처음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중국 및 한국에서는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보통은 모두 창을 갖지만 서방(西方)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붓과 책을, 북방(北方)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탑을, 그 외에는 칼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선조에 이르면 위치와 지물이 약간씩 달라져 동방의 지국천왕은 칼, 북방의 다문천왕은 비파, 남방의 증장천왕은 용과 여의주(또는 새끼줄), 서방의 광목천왕은 보탑과 당을 받쳐들게 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보림사의 사천왕상은 지금까지 조사된 조선시대 사천왕상 가운데 조성년대가 가장 빠르며 위의 예를 잘 따르고 있는 의상(倚像)으로 여러 개의 나무를 잇대어 상을 만든 다음 부분적으로 표면에 천을 붙이고 회를 칠한 뒤 채색을 하였다. 동방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은 호화롭게 장식된 보관을 쓰고 얼굴은 분노한 표정을 하였으며 복장은 갑옷과 천의(天衣)를 입고 있다. 건장한 체구에 오른손으로 칼의 손잡이를 잡고 왼손은 칼끝을 받쳐 들고있는데 오른쪽에서 약 20°정도 내려들고 있으며 칼은 다른 것보다 굵은 편이다.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은 높직한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띤 다소 인자한 모습으로 선비형의 눈썹과 긴 턱수염에서 부드러운 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물로는 울림통이 없이 4현만 있는 비파를 들고 있으며 하부에는 힘에 겨운 듯 고통스러워 하는 악귀가 왼쪽 다리를 받쳐들고 있다. 남방 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은 굳게 다문 입과 함께 근엄한 얼굴표정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칼, 왼손은 두 갈래로 갈라진 짧은 창을 들고 있다. 동체가 당당해 보이며 성실하게 조성한 흔적이 역력하여 수호신으로서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은 부릅뜬 눈에 입을 벌리고 소리지르는 듯한 위엄있는 모습으로 보관과 천의자락, 갑옷 등의 차림새는 다른 상(像)들과 거의 같다. 오른손에는 당(幢)을 잡고 왼손에는 무엇인가 들고 있었던 모습인데 현재는 없어져 알 수 없으나 보탑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 사천문 입구에는 좌·우의 동방천왕과 남방천왕 옆에 인왕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부리부리한 눈, 큼직한 코, 일자로 다문입, 양쪽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에서 강건함을 엿볼 수 있으며 각 부의 조각도 우수하다. 이와같이 보림사의 사천왕상은 4구가 모두 같은 형식으로 발을 아래로 내린 의상(倚像)이며 화려한 보관을 쓰고 어깨까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다. 동체에는 채색무늬의 갑옷을 입고 양쪽 어깨에서 천의자락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허리띠에는 여러 가지 무늬와 채색을 하여 매우 화려하며 작품성도 뛰어나 보인다. 조선시대 사천왕상은 거의 모두 중국식 갑옷에 각기 다른 지물(持物)을 들고 있으며 발밑에는 악귀를 밟는 형태상의 특징과 함께, 무장한 분노상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보관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귓바퀴를 돌아 어깨위에서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자비로운 보살상의 모습이 추가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조선시대 사천왕상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도상적 특징으로 보림사의 상이 가장 앞서서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적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조성시기는 천왕문에 걸려 있는 목판의 「보림사천왕금강중신공덕기(寶林寺天王金剛重新功德記)」와「보림사중창불사기록(寶林寺重創佛事記錄)」에 의해 중종 10년(1515)에 조성되고 1666(8)년과 1777년 2차례에 걸처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림사 사천왕상은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란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모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사천왕상이 있는 사천문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2540000,36&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