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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금수정(영평2경, 포천향토유적1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6. 23. 17:01

  가는 방법은 포천 안동김씨고가터(경기도 문화재자료138호, http://blog.daum.net/dbsqkqh/4158)에 가는 방법을 참조.

  

 

 

 

 

 

 

 

 

 

 

영평8(팔)경 출처 : 포천시청

영평1경 : 화적연, 영평8경중 1경으로 영북면 자일리와 관인면 사정리 경계에 있다. 한탄강에 있는 큰바위와 깊은 연못으로 이루어진 절경이다. 마치 볏짚단을 쌓아올린 것 같은 형상이어서 禾積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전에 내려오는 전설은 어느날 한 늙은 농부가 3년 가뭄에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면서 이 연못가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늙은 농부는 "이 많은 물을 두고서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한다는 말이냐, 하늘도 무심커니와 용도 3년을 두고 낮잠만 자는가 보다.. 이렇게 탄식을 하고 있으려니 화적연 물이 왈칵 뒤집히면서 용의 머리가 쑥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가뭄이 들면 화적연에서 축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명승93호

 

영평2경 : 금수정, 영평8경중 2경으로 창수면 오가리 영평천에 있다. 1608년경에는 이곳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우두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이 정자를 사위인 봉래 양사언에게 주었는데 봉래선생은 정자이름을 금수정이라 하고 편액도 갈아 붙였다고 한다. 이 정자는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 앞에 흐르는 맑은 물과 숲이 아름답게 어울리고 맑은 물에는 낚시를 담그는 풍류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후 안동김씨의 소유로 전해오면서 몇 차례 중수되었으며 6.25때 완전 소실된 것은 지난 1989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정자 현판은 봉래 양사언 선생의 글씨이며 정자 옆에는 선생의 시조비인 “태산이 높다하되…”가 있다. 향토유적 제17호

 

영평3경 : 창옥병, 영평8경중 3경으로 창수면 오가리 영평천변에 있다. 창옥병이란 이름이 말하듯이 기암괴석으로 된 병풍을 연상하면 된다. 창옥병의 폭이 수마정이요 높이가 40-50자에서 백수십자로 깎은 듯한 절벽으로 절벽에는 굴곡이 있고 고저가 있고 암혈이 있는가 하면 갖가지 형태의 동물모양이 되어 돌출한 바위도 있다. 이 절벽에 이름모를 야생화도 피고 낙낙장송도 있으며 작은 소나무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오묘한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1931년에 이 암벽을 깎아서 터널을 뚫어 도로를 만들어 통행하였으나 최근에 우회도로가 생겨 현재는 일부 차량만 통행하고 있다.

 

영평4경 : 낙귀정지, 영평8경중 4경으로 영중면 거사리에 있던 작은 정자의 이름이다. 이 정자는 영의정으로 등용된 일이 있는 중신 황씨가 관직을 떠나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서 자기집 근처에 정자하나를 짓고 낙귀정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그 뒤 황씨는 나라를 배반한 신하로 혐의 받아 왕으로부터 사약을 받고 죽었다. 황씨는 자신의 무죄를 죽음으로 항변하였으나 살던 집과 그 부인과 자식까지도 처벌하였다한다. 이러한 설화는 억울함을 원통히 여긴 마을사람들에 의해 전해오는 것이 오늘날까지 구전되어 오고 있다.

 

영평5경 : 선유담, 영평8경중 5경으로 이동면 도평리 백운동계곡에 있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놀던 자리라고 한다. 백운산 기슭을 끼고 돌며 구비치는 영평천 상류계곡으로 수석명미한 선경이다. 물에 잠긴 깎아지른 암벽그림자도 좋거니와 암벽에 반사되는 물빛도 아름답다

암벽사이에 조심스럽게 핀 분홍색 철쭉꽃은 겁에 질린 소녀처럼 애절하게 보인다. 또한 암벽에는 “仙游潭”이라는 세 글자가 암각되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양사언선생이 썼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영평6경 : 와룡암, 영평8경중 6경으로 일동면 수입리 산내지동에 있는 명승지로 영평천과 수입천이 합류된 지점에서 약간 하류에 있다. 이 와룡암은 바위의 기함보다는 주위의 풍경과 그 자체가 절경이다. 예부터 철쭉이 피던 6월이면 활짝 핀 꽃이 그대로 수면에 비치면 절벽도 붉고 물도 홍류가 되어 수중의 사람과 물고기도 붉게 보였다고 한다. 이 절경수중 기암이 바로 와룡암이다. 그 형태가 누워있는 용처럼 생겨 상체는 수면 위로 떠 있고 꼬리에 해당되는 바위의 길이가 50m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암의 이름은 멀리 고려시대의 문헌에도 나와 있다. 이것으로 보아 와룡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홍수예방조치에 따라 와룡암의 자취는 사라졌으니 아쉬운 감을 금할 수 없다.

 

영평7경 : 백로주, 영평8경중 7경으로 영중면 거사리 한내천 하류에 있다. 백로주는 바위라기 보다는 조그만한 바위산이라 전체가 한개 바위로 형성되어 그 형상이 마치 백로가 물속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백로암이라는 이름은 약 400년전 문헌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훨씬 전에 지어진 이름인지도 모른다. 최근 백로주 북쪽 하천부지에 잔디와 나무를 심어 유원지를 만들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경기관찰사 동강이 이곳에 왔다가 바위에 “三山發落靑川外. 二水中分白鷺州”라는 시를 음각하여 놓은 것이 지금도 남아있다.

 

 

영평8경 : 청학동, 영평8경중 8경으로 영중면 금주리에 위치하고 있다. 일동면으로 부터 흘러내려온 물을 껴안 듯 한 형태의 암석 병풍처럼 된 절벽이다. 창옥병처럼 장엄하지 못하고 유수량도 적기는 하나 거암단애의 절벽이 있고 그 밑에 푸른 물이 흐르니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이 암벽 낭떠러지에는 (靑鶴洞)이라는 세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곳에 내려오는 전설은 어떤 가난한 효자가 아버님의 시신을 모시고 이장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한 삽을 뜨는 순간 그 속에서 청학 한마리가 나와 슬프게 울며 창공에 원을 그리면서 날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효자는 그곳에 산소쓰기를 단념했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