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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성혼선생묘(경기도 기념물5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5. 25. 15:15

 

 

 

 

경기수퍼 옆길로 들어간다.

 

 

우계 기념관 건물이다.

 

 

 

 

 

언덕길로 올라 간다.

 

 

이곳에 주차 한다.

 

 

 

우계 성혼선생의 신도비와 아버지인 청송 성수침의 묘갈이 보인다.

 

 

사당

 

 

 

 

오른쪽 것이 우계 성혼선생의 신도비이고, 왼쪽의 것은 성수침 묘갈이다.

 

 

성혼선생 신도비

 

 

 

 

 

 

청송 성수침 묘갈

 

 

 

 

 

 

우계 성혼의 묘소는 비각 왼쪽으로 올라 간다.

 

 

 

 

 

 우계 성혼 묘소 앞에 있는 아버지 성수침묘소와 어머니인 파평윤씨묘. 문화재청홈피에 우계 성혼선생 아버지인 청송 성수침묘 사진이 실려 있다. 성혼선생의 묘는 그 뒷편에 있다.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내용] : 1. 파주시 문화유적에 깊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귀하가 지적하신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우계성혼선생묘 사진에 대하여는 청송 성수침이 아닌 우계 성혼 사진으로 수정하도록 문화재청에 요청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3. 더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파주시 문화관광과 문화팀(031-940-43XX)으로 연락주시면 정성껏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우계 성혼선생묘이다.

 

 

 

 

  우계 성혼선생의 외손자인 동토공 윤순거가 쓴 묘비이다.

 윤순거(1596~1668, http://blog.daum.net/dbsqkqh/4031)는 성혼의 제자이자 사위인 문정공 팔송 윤황(http://blog.daum.net/dbsqkqh/4033)의 둘째 아들인데 큰아버지인 윤수에게 양자감. 본인은 윤순거의 둘째 동생 석호 윤문거(http://blog.daum.net/dbsqkqh/4036)의 후손이다.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우계(牛溪) 성혼(1535∼1598) 선생의 묘소이다. 휴암 백인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같은 고을에 사는 이이와 사귀게 되면서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학문 성향에서는 이황을 지지하여 이이와는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의 덕행이 뛰어나 여러 번 관직이 주어졌으나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이이의 권유로 이조참판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우참판에 이르고 선조 27년(1594)에는 좌참판에 이르렀다. 그가 죽은 뒤 선조 35년(1602)에 사화와 관련하여 관직이 박탈되었다가 인조 11년(1633)에 다시 좌의정의 벼슬이 내려졌다. 묘를 정면으로 하여 오른쪽에는 인조 27년(1649)에 김집이 글을 짓고 윤순거가 글씨를 써서 세운 묘비가 있다. 묘소 입구 오른쪽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김상헌이 글를 짓고 김집이 글씨를 쓴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59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