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여주 이완장군묘(경기도 기념물1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12. 20. 21:40

이완장군 묘소는 '여주시 상거동 산 19-18'에 있다. 이완장군의 아버지는 충북 충주출신인 이수일로 본관은 경주. 자는 계순, 호는 은암, 시호는 충무이다. 1624(인조 2) 이괄의 난 때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부원수로 안현에서 반군을 대파하여 진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계림부원군에 봉해졌다.



인터넷 지도에는 정익공 이완장군묘가 실제위치보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안내되어 있다.

 

 

1. 이완장군 묘

2,3 주차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노란 점따라 가면 된다. 인터넷에는 다른 곳에 표시되어 있다.

 



이완장군묘는 우측에 있다고 안내 되어있다.



넓은 공간에 주차하고 뒤돌아 본 모습이다. 반대편에도 넓은 주차장이 있다.



논길로 가야 한다.




안내판 따라 좌측으로 올라간다. 곧바로 이완장군의 셋째아들인 이주 묘가 나온다. ㄱ자로 꺾여 올라 가면 이완장군의 묘가 나온다.






 

 

 

우암 송시열이 쓴 비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죽헌(梅竹軒) 이완(16021674) 장군의 묘소이다. 인조(仁祖) 2(1624) 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평안도 병마절도사·함경도 병마절도사·경기도 수군절도사 등의 자리를 역임하였다. 1649년 효종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 정책을 계획할 때 어영대장, 훈련대장으로 발탁되었고 이어 훈련대장과 병조판서의 임무를 맡았다. 당시 제주도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을 시켜 신무기를 만들게 하였으며, 성곽의 개조와 신축 등을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승하하자 북벌 계획이 중지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종 때에는 수어사로 임명되었고, 포도대장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묘역은 봉분을 중심으로 둘레에 돌담이 둘러져 있고 봉분 앞에는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드리기 위한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다. 묘역의 좌우에는 문인석·망주석·동자석이 각각 1쌍씩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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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16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