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명승, 사적

광주 남한산성(호국의 길을 따라서 나라사랑 남한산성 성곽투어, 사적57호) 1

천지연미소바위 2017. 7. 10. 21:55

4년 전에 사적 57호인 남한산성(http://blog.daum.net/dbsqkqh/4231)에 문화재 탐방으로 다녀왔었데. 남한산성은 본인의 직계 할아버지인 팔송 윤황(http://blog.daum.net/dbsqkqh/4033)이 척화론 주장하였고 인조의 삼전도 굴욕 후 젊은 삼학사(http://blog.daum.net/dbsqkqh/1609, http://blog.daum.net/dbsqkqh/2677)는 청나라 심양로 끌려가 처형당했고, 노인인 본인의 할아버지는 충북 영동으로 귀향을 가게 된 곳이다. 2017. 6. 11일에 용인바이오고등학교와 경기동부보훈지청과 공동 주관으로호국의 길을 따라서 나라사랑 남한산성 성곽투어행사를 하였다. 남한산성 행궁 앞 공터에서 호국의 달 기념행사를 마치고 북문-서문-수어장대까지 다녀오는 성곽투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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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yonginilbo.com/news/article.html?no=67798

  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362279

 

나라사랑 남한산성 성곽 투어 식전 행사장이다.






초가집의 남한산성 행궁 입장 티켓 매표소와 멀리 행궁이 보인다.



남한산성 북문쪽으로 걸어 가는 중이다.







북문이다.









우익문(서문)이다. 이곳이 인조가 항복하러 삼전도로 나간 문이다.















수어장대와 청량당



이 청량당은 수어장대에 바로 아래에 있다.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것이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불모로 잡혀 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을 지은 것이다.








청량당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673)에 한산주에 주장성晝長城(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1624)이다. 인조 14(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정비된 곳으로 손꼽힌다.(출처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057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