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명승, 사적

양양 오산리 유적(사적39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6. 10. 15:56

  신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이다. 동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쌍호란 호수를 메우기 위해 토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토기와 석기가 발견되면서 유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집터 11기, 불을 피웠던 자리 5기, 도구를 만들던 곳으로 보이는 돌무지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또한 많은 양의 토기조각과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흑요석제 석기의 성분 분석 결과 흑요석 원석을 백두산 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선사시대의 백두산 지역과 오산리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의 문화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기원과 주변지역 사이에 연결된 문화적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양양오산리선사유적 → 양양 오산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부락 해안으로부터 200여m 떨어진 사구(砂丘)내에 위치하고 있다. 1977년 봄, 주위의 ‘쌍호’ 라고 불리우는 자연 호수를 메워 농지로 전용하기 위해 사구(砂丘)의 모래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대량으로 노출되어 처음 알려진 후, 수 차례의 지표조사를 거쳤으며, 1981년부터 1987년에 걸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연차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이 위치한 사구(砂丘)는 원래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지만 1977년 토사 채취과정에서 가운데가 잘려서 동서로 양분되어 있으며, 조사 상 편의를 위하여 동쪽의 것을 A지구, 서쪽의 것을 B지구라고 명명하였다. 1차부터 3차 조사 결과를 통해 주거지 6기, 4차 조사에 의해 주거지 3기와 야외노지 2기, 5차 조사에서는 주거지 2기, 적석유구 3기, 소할석 유구 2기, 6차 조사에서는 주거지 1기 등의 유구와 신석기 시대의 각종 토기편과 석기 등이 층위를 달리하며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전반적인 현황은 직경 6m내외의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바닥에는 약 5cm두께의 진흙을 깐 다음 그 위에 불을 놓아 단단하게 만들었으며, 중앙에는 110cm×70cm정도의 사각형 노지(爐址)를 1~2개씩 설치하였다. 주거지 바닥면과 그 외곽 부분에는 고저차가 거의 없어 지상가옥의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적석유구는 깊이 20~30cm의 토광을 판 후 크기 10~40cm의 할석과 천석으로 중앙부는 4~5겹 외곽부는 2~3겹을 깔아 중앙의 두께가 60cm정도에 이른다. 돌들은 불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균열이 심하고, 유구 주변의 지표면과 토광이 모두 불의 영향을 받은 점을 고려할 때 공동취사장의 역할을 한 유구로 추정되며, 총 4기가 발견되었는데, 크기는 3.4×2.5cm(B-1), 1.8×0.8cm(B-2), 2.7×1.8cm(B-3), 3.3×3.3cm(B-4)이며, 타원형이나 원형이다. 오산리 유적의 층위는 크게 3개의 문화층으로 나누어지는데, 주거지가 발견된 가장 아래의 제 Ⅰ문화층에서는 평저토기와 조합식 어구가 공반되고, 그 위의 제Ⅱ 문화층에서는 역시 마찬가지 유물이 출토되나 토기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가 보인다. 제Ⅲ 문화층은 그 유물 포함층이 남아있는 부분이 적고 출토유물도 소수이지만 서해안식 뾰죽밑 빗살무늬토기와 석재 어망추가 보이고 있어 제Ⅰ,Ⅱ 문화층과 뚜렷한 구분이 된다. 특히 제1문화층에서 출토된 흑요석제 석기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지역에서 채취된 것임이 밝혀져서 선사시대의 백두산지역과 오산리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의 교역이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오산리 유적의 가장 큰 의의로는 우리나라 동북지방(함경도)과 남해안 지방(경상남도)을 잇는 동해안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 문화 교류 관계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일본 큐슈 지방의 신석기 문화의 원류가 우리나라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는 점으로, 남한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흙으로 만든 사람 얼굴 조각이 나와 신석기 예술에 관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3940000,32&queryText=((V_KDCD=13)) <and>(((V_NO >=394)<and>(V_NO <=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