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기타

함평 수벽사& 임천정사

천지연미소바위 2022. 11. 13. 15:24

 

 

임천정사 : 파평 윤씨의 제실. 입향조 윤길이 지었다. 한때 인재양성 공간으로 쓰였다

 

 

수벽사 : 느티나무 숲 물레방아 옆에 자리 잡은 수벽사는 고려시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쌓은 윤관(?∼1111년)장군을 모신 사당

 

고려국 한림학사 둔옹 퍄평 윤선생 신도비

 

 

퍄평윤씨 대언공 장방손 한림공파 유래비

 

 

앞에는 해보면 상곡리 635번지에 모평 마을 숲이 있다.

 

 

신천강씨 열녀비 :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두 팔이 잘리면서까지 남편 윤해의 죽음을 막으려했던 강씨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각.

 

 

충노비 : 윤해와 신천강씨 부인이 죽임을 당하자 이 소식을 들은 장남 17살 청립은 노비였던 도생과 사월에게 4살짜리 동생(정립)을 부탁하고 전쟁터로 달려 나갔으나, 청립도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도생과 사월은 주인의 빈자리를 대신해 정립을 잘 키워 윤씨 가문을 지켰다. 나중에 이 집안의 후손들이 충노비를 세웠다.

 고려 개국공신인 윤신달(893~973)이 파평윤씨의 시조인데, 혜종 때 동경(경주) 대도독으로 부임해 30년간 중책을 맡았다. 윤관은 윤신달의 5세손이다. 윤관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수태보·문하시중, 감수국사에 올랐고 예종 묘정에 배향됐다. 공신에 오르고 영평현(파평) 개국백에 봉해지면서 윤씨의 본관이 이곳으로 정해졌다. 고려때 여진이 점유하던 9성을 회복한 윤관(?~1111)은 우리의 땅, ··북 간도가 거란 등에 의해 잠시 점유되었을 뿐 수천년 우리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위인이다. 점령은 했지만 자치권을 주었다. 11 윤보(1252~1329) 충열왕  문과 급제해 성균감대사성서북면도지휘사를 거쳐 수첨의찬성사에 오르고 영평군에 봉해졌다그의 큰아들 윤계종(?~1346) 충혜왕비 희비의 아버지로서 충정왕(고려 30 재위 1348~1351) 외조부이고찬성사를 역임했다윤보의 둘째아들 윤안적(1269~1319) 충정왕  과거급제하여 대언(승지와 같은 직책) 역임하고 대언공파를 열었다. 15 윤길(1368~1462) 목은 이색에게 수학해 문과급제하고 한림학사를 역임한 고려말 문신이다충절을 지켜 조선 개국에 불참하고 벼슬하지 않았다계유정난 이후에는 사촌매제인 김종서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문이 원인이  제주에 유배됐고 사면받아 돌아가는 길에 산자수려한 전라도 모평현에 터를 잡아 파평윤씨의 모평 세거가 시작됐다. 21 윤형수(1521~1587) 하서 김인후의 문인으로 참봉·선정관을 역임하고 임곡유고를 남겼다윤형수의 아들 윤해(1541~1597) 신천강씨 부부는 정유재란  왜적의 칼에 희생됐는데 신천강씨가 남편을 해치려는 칼날을 두팔로 막아 잘려나가고 결국 부부 모두 처참하게 죽임당했다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열부강씨정려가 건립(1812)됐다고 한다부부의 어린  아들 윤성립윤정립(1594~1683) 보살펴 길러준  집안 노비 ‘도생과 사월 은덕을 기려 세워진 <충노비> 전쟁의 참혹함을 이겨낸 시대를 기억하게 한다. 24 윤은로(1612~1686) 병자호란을 맞아 은봉 안방준과 의병을 일으켰다효자로 알려진27 윤동훈(1716~1770) 대언공파 윤동훈종가를 열고 대대로 가학의 전통을 잇게 했다. 31 윤자화(1825~1884) 문과 급제하고 사헌부 지평을 거쳐 대사헌에 오르고 ‘귀영재유집 남겼다종가는 윤자화 과거급제 시권과 강서채점지(과목별 점수기록부) 비롯한 유물들과 학문하며 영농했던 터전의 귀영재도천헌수벽사영양재  고건축물들을 보존하며 선조의 충절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출처 : 남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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