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는 본래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과수, 또는 관상용으로 오래 전부터 심어온 나무이다. 꽃은 5월에 연한 홍색으로 피며, 열매는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9월에 황색으로 익는데, 향기와 맛이 그윽하다. 청원 연제리의 모과나무는 나이가 300∼3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2.5m 둘레는 3.7m이다. 현재는 나무의 줄기에 큰 구멍이 나 있는 상태이다. 이 모과나무에는 전해오는 전설이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모과나무가 심어져 있는 옆집에 사는 사람이 병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자 무당이 모과나무 밑에 무언가 있으니, 그것을 파내면 낫는다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믿고 모과나무 밑을 파니 환자가 낫기는 커녕 오히려 정신까지 이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파내었던 흙을 다시 원래대로 묻고 정성껏 용서를 빌으니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청원 연제리의 모과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왔으며,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등 민속적 자료와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충청북도 기념물112호----민원으로 지정해제되어 내용이 없어졌네요.)
국내에 있는 모과나무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강외면 연제리에 있는 모과나무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월13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천연기념물 제522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나 생육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연제리는 모과나무가 많아 모과울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모과울은 밀양박씨 세거지이며 조선시대 유학자 박훈의 유허지이다. 조선 세조 초에 연제리에 은거하던 서산 류씨 류윤(柳潤)이 세조로부터 부름을 받자 자신을 이 모과나무에 비유해 쓸모없는 사람이라며 세조의 부름에 불응하였다 한다. 이에 세조는 류윤의 불응에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어서(御書)를 하사하였고, 류윤은 화답으로 모과나무를 그림으로 그려 세조에게 올려 보냈다한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12호일때는 주소가 연제리 산10-1이었는데 천연기념물이 되니 연제리 647번지로 되었네요. 모과나무가 이사한것도 아니고, 아직도 문화제청에는 연제리 산10-1의 충청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청원 연제리의 모과나무가 있으니 두 나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겠네요. 또 어느 주소가 맞는지? 천연기념물 설명에는 500년(추정), 충청북도 기념물 설명에는 300~350년입니다.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 647번지로 찾아 가세요.
나무 앞에는 서흥캡셀오송공장 공사 현장이 보이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서편으로 직선거리 약1km 정도 떨어져있다.
문화재청에 두곳에 있네요
1. 천연기념물522호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6,05220000,33&queryText=((V_KDCD=16)) <and>(((V_NO >=522)<and>(V_NO <= 522)))
2. 충청북도 기념물112호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1120000,33&queryText=(`연제리`)<in>z_title
이제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12호는 해제된문화재로 넘어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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