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문화재 23

울산부선생안(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선생안(先生案)’은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관서나 해당 관원의 성명·직명·지위와 부임 및 이임일자 등을 기록한 책을 뜻한다. 1598년(선조 31)에 이임한 군수 김태허에서 시작하여 1906년 부임한 군수 김덕한에 이르기까지 309년 동안 울산에 부임한 역대 수령과 재임 시의 좌수․별감 및 호장․기관의 인명을 기록하였다.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두로 작성된 부분이 일부 있으며, 특히 19세기에 이르면 이두로 작성된 사례가 증가한다. 책의 크기는 가로 37㎝, 세로 50㎝로 각 면마다 계선을 둘렀다. 『울산부 선생안』은 서두에는 울산의 건치연혁을 기록한 ‘울산부 치적(治蹟)’이 있으며, 그 뒤에는 선생안의 인명을 기록하였다. 인명은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 및 판관, 사족층에서 담당한 좌수․별감,..

울산 보부상단 문헌자료(울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

『경상남도 울산군 우지회 천금록(慶尙南道 蔚山郡 右支會 千金錄)』은 울산을 중심으로 병영, 남창, 목도, 대현, 방어진, 서생지역 일대에서 활동했던 보부상 조직의 지역별 임원 명단이다. 1899년부터 1915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앞부분에는 1900년(광무 4)에 작성된 발기취지문과 회칙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규격은 가로 27.7㎝, 세로 44.8㎝이다. 『상무우단장정(商務右團章程)』은 1908년(융희 2)에 작성되었으며, 동아개진교육회의 상무과(商務課) 세칙이 수록되어 있다. 규격은 가로 24㎝, 세로 34㎝이다. 이 문헌들은 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초기 울산지역의 상거래 실태와 상인 조직의 실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지역사 자료이다. 이것을 통해 한말 보부상의 활동, 정부 및 지방관의 상업 문제에 ..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441호)

처음에는 사리탑이 깨끗하여 모조품으로 착각했다. 해설사에게 확인 결과 진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가서 사진을 더 촬영했다. 태화사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62년에 발굴하여 일시적으로 부산으로 옮겼다가, 다시 울산의 학성공원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었다. 2011년 현재는 울산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존하고 있다. 태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시기에 없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아있는 유물로는 이 사리탑이 유일하다. 일반적인 사리탑들과는 달리 널따란 바닥돌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이 놓인 간단한 구조로, 바닥돌에는 앞면과 옆면에 가느다란 안상(眼象)이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종 모양을 하고 있는 몸돌은 윗부분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 ..

울주 복안리지석묘(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8호)

복안리지석묘는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717-4'에 위치한다. 다음지도에는 북서방향으로 50여m에 표시되어 있다. 복안리 지석묘는 천마산의 동쪽 구릉 하단부인 두서면 복안리 음지마을 뒤쪽 계단식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일대의 야산과 경작지에는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 토기가 확인되고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반듯하게 놓여 있는데 한쪽이 깨어져 있으며, 크기는 길이 390㎝,너비 340㎝, 두께 140㎝이다. 아래에는 받침돌 1개가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식 지석묘로 추정된다. 내부 구조는 학술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복안리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두서 및 봉계 일대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출처 : 문화재청) 시골 마을이라 길이 좁다. 본인..

울주 은편리지석묘군(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1호)

은편리 지석묘가 3개 있다는데 2개만 보았다. '두동면 만화리 900-3' 근처 정류장 옆에 있는 지석묘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 586-2에 있는 지석묘 다음 지도에 은편리지석묘 위치 표시가 남쪽으로 80여m에 있다. 아래 사진은 동남쪽 300여m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혹시 지석묘? 은편리 지석묘군은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국수봉의 나지막한 능선 자락에 위치하며 현재 은편리 숲안마을의 서쪽 편에 있다. 이 지석묘군은 바둑판식으로 추정되며, 3기(基)의 지석묘가 한 장소에 모여 있다. 제1호는 만화로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2․3호는 뒤쪽으로 40m쯤 떨어진 대밭 옆에 있다. 덮개돌의 규모가 제일 큰 제1호는 길이 270cm, 너비 220cm, 두께 50cm 정도이다. 이들 덮개 돌 위에는 작은 돌로 문질..

울주 만화리지석묘(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9호)

만화리지석묘는 칠조(비조)회관 옆에 있다. 만화리 지석묘는 1기로서 두동면 만화리 비조마을 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비스듬히 뉘어 있으며, 네모꼴에 가까운데 크기는 길이 260㎝, 너비 185㎝, 두께 120㎝정도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사람머리보다 조금 큰 받침돌이 확인되어, 바둑판식 지석묘로 추정된다. 덮개석의 상부에는 성혈과 같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지석묘 부근에서 돌도끼 한점이 출토되었다고 주민들은 전하고 있다. 이 만화리 지석묘는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1호인 은편리 지석묘군과 함께 청동기시대 두동 지역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출처 : 문화재청)

울주 박제상유적(치산서원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충렬공박제상 기념관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재위 417∼458) 때 활동한 충신이다.『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아버지는 파진찬(波珍飡) 물품(勿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및 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물왕의 둘째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셋째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내었다. 내물왕의 큰아들인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 부터 구출하기 위해 박제상을 천거하였다. 박제상은 양산(梁山)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눌지왕 2) 왕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시 왜..

울주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 https://blog.daum.net/dbsqkqh/5813)에 가는 방법을 참조. 천천리 공룡 발자국 화석은 직진한다. 천천리 각석에서 바라 본 공룡 발자국화석 왼쪽에는 천천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오른쪽에는 천천리각석이 있다. 개울 건너에 있는 천천리각석 공룡은 중생대의 쥐라기로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은 하천 옆의 평평한 바위 위에 있으며, 약 1억 년 전 백악기시대에 살았던 중·대형 공룡의 흔적으로 보인다. 바위 위에는 대형 초식공룡인 한외룡(울트라사우루스)을 비롯하여 중형 초식공룡인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고성고사우르스) 등의 공룡발자국화석 2백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 나타난 발자국 화..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

울산암각화박물관 건너서 암각화 가기전에 있는 천천리각석 가는 안내판. 여기서 걸어 가기는 멀다. 울산대곡박물관쪽으로 갔다. 울산대곡박물관은 좌회전, 천천리 각석은 직진하여 장천교를 건넌다. 멀리 두동면은 좌회전, 천천리각석은 직진하라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근처 적당한 곳에 주차 하기를 권해본다. 본인은 차량 통행이 없어 안내소 앞까지 가서 주차했다. 천천리각석은 우측으로 가고 천천리 공룡 발자국 화석은 직진한다. 뒤 돌아본 모습이다. 본인이 갔을 때는 길이 약간 물에 잠겼다. 관람객을 위해 길을 보수해야... 왼쪽으로 내려간다. 천천리 각석은 계단 내려가자마자 왼편에 있다. 비 바람에 침식작용이 걱정된다. 천천리 각석 개울 건너에 천천리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 왼쪽이 천천리 공룡 발자국화석, 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