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원주 김제남 신도비(강원도 문화재자료2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0. 5. 21:43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그의 묘 가까이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선조임금의 장인이었던 김제남(1562∼1613) 선생을 기리고 있다. 선생은 선조 18년(1585)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활동을 시작하였고,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에는 이조좌랑에까지 올랐다. 둘째 딸이 선조의 둘째 비인 인목왕후로 채택되자 연흥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광해군 5년(1613)에는 인목왕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채 사약을 받고 세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후에야 명예가 회복되어 그를 위한 사당을 지었고, 이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구조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 있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세운 비로, 왕의 명령으로 그의 사당을 지을 때 함께 세워두었다 한다. 이 비는 조선(朝鮮)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의 아버지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에 봉(封)해진 김제남(金悌男)(1562∼1613)의 신도비이다. 김제남은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고 한다는 무고로 잡혀 사약(賜藥)을 받고 세 아들과 함께 화를 당했다. 제주도(濟州道)에 유배(流配)되었던 며느리 정씨(鄭氏)와 손자(孫子) 천석(天錫)이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생환(生還)하고, 인조(仁祖)의 특명으로 김제남의 사당(祠堂)을 짓고 이 비를 세웠다.(출처 : 문화재청)

 

 

김제남은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이자 인목왕후의 아버지.

영창대군묘(경기도 기념물75호, http://blog.daum.net/dbsqkqh/1113)는 안성 일죽에 있다. 김제남과 관련된 천연기념물289  합천화양리 소나무(http://blog.daum.net/dbsqkqh/1260)가 있다.

 

 

 

신도비 옆에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0210000,32&queryText=((V_KDCD=31))%20<and>(((V_NO%20>=21)<and>(V_NO%2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