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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서울 문묘 및 성균관<대성전ㆍ동무ㆍ서무ㆍ삼문ㆍ명륜당>(보물14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0. 28. 19:29

  서울 문묘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우고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것을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었으나, 이 역시 임진왜란으로 타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묘는 대성전을 비롯한 동무·서무 등 제사를 위한 공간인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동재·서재 등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명륜당 구역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은 선조 34∼35년(1601∼1602)에 지은 건물로,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두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중국 건축 기법을 느끼게 한다. 대성전 앞에 마주해 있는 동무와 서무는 공자의 제자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선조 36∼37년(1603∼1604)에 세웠다. 동무와 서무 끝에서 시작하여 주위로 담장을 둘러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구역을 나눈다. 교육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은 대성전의 뒤편에 위치해 있는데, 선조 39년(1606)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중당과 양옆에 있는 익실로 구분하는데, 중당은 옆면에서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익실은 팔작지붕으로 중당보다 조금 낮게 구성되어 위계(位階)를 나타내 주고 있다. 지붕과 처마의 높낮이와 전체적인 건물의 균형이 우리나라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명륜당 앞에 마주하여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동재·서재는 기숙사 공간으로 성균관(成均館)이라 알려져 있다.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은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며, 또한 건축사 연구의 자료로서 전통과 역사가 깊이 배어있는 곳이다. 조선(朝鮮) 태조(太祖) 7년(1398)에 처음 세웠으나, 제2대 정종(定宗) 2년(1400)에 불타 없어졌다. 제3대 태종(太宗) 7년(1407)에 다시 지은 것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병화로 또 타버렸다. 그러나 성균관의 유생들이 전국적으로 자금을 모아 선조(宣祖) 34∼35년(1601∼1602)에 대성전(大成殿)을 중건하고, 36∼37년(1603∼1604)에 동무(東무)·서무(西무)·신문(神門)·중문(中門)을, 39년(1606)에는 명륜당(明倫堂)과 동재(東齋)·서재(西齋)를 중건 확충하였다. 인조(仁祖) 4년(1626)에 정록청(正錄廳), 존경각(尊敬閣), 양현고(養賢庫) 등을 재건하였으며, 고종(高宗) 6년(1869)에 보수하였다. 문묘(文廟)의 동·서 양재(兩齋)를 일명 성균관(成均館)이라고도 한다. 문묘는 공자(孔子) 즉 문선왕(文宣王)의 묘당(廟堂)으로서, 대성전(大成殿)은 공자를 주로 하여 증자(曾子), 맹자(孟子), 안자(顔子), 자사(子思) 등 4성(四聖) 을 배향하고 다시 10철(哲)과 6현(賢)을 종향(從享)하였다. 동서 양무에는 10철을 제외한 공자의 72제자를 비롯하여 한(漢)·당(唐)·송(宋)·원대(元代)의 현인(賢人)과 우리나라의 18명현 등 112명의 위패를 종향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문묘에서 전통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증가한다는데 내가 간 날도 결혼식을....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1410000,11&queryText=(`문묘`)<in>z_title


 

사적143호 : 문묘란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나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말한다. 문묘는 크게 제사를 위한 건물들이 있는 대성전 구역과 학문을 갈고 닦는 건물들이 있는 명륜당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태조 7(1398)에 처음 세웠으나 정종 2(1400)에 불에 타 없어졌고, 태종 7(1407)에 다시 지은 것도 임진왜란 때 타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리되어 있다. 대성전 서우(보물 제141) 북쪽에는 제사 때 쓰는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잡다한 것을 두는 잡사가 있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존경각과 향관청, 비천당, 계성사가 있으며, 남쪽 좌우에 유생들이 살면서 글을 읽던 동재와 서재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배치되 있다. 동재 동편에는 식당이 있고, 그 위쪽으로는 창고, 육일각, 잡사가 배치되어 있다. 문묘는 제향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생들이 공부하는 유교의 중심지로 건축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서 전통과 역사가 깊이 배어있는 곳이다.

(서울문묘일원(보물 및 현대건축물을 제외한 지상시설물 포함) 서울 문묘와 성균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