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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망경암마애여래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102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1. 10. 16:02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망경암(望京菴)의 암벽을 우묵하게 파서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불상을 새겼다. 이 암벽에는 그 외에 14곳에 얕은 방을 파고 글을 새겼다. 서울이 한 눈에 보이는 이 곳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역대 임금이 친히 거동하여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었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세종의 7째 아들인 평안대군과 제안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칠성단(七星壇)을 만들었다고 한다. 불상 주위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광무 1년(1897)에 이규승이 관음상을 새기고 절을 세웠다. 불상은 민머리를 하고 있는데, 얼굴은 마모가 심해서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놓고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불상으로 조각 솜씨가 특별하지 않지만 만들어진 연도가 뚜렷한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이 마애상(磨崖像)은 서울이 보이고 조망(眺望)이 빼어난 망경암(望京菴)의 자연암벽에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부조(浮彫)한 불상으로, 이 주위 14군데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고려말(高麗末)에서 조선초(朝鮮初)에 걸쳐 임금이 친히 거동하여 나라와 백성의 안락과 수복을 빌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왕실에서는 세종(世宗)의 일곱째아들인 평안대군(平安大君)과 제안대군(齊安大君)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서 칠성단(七星壇)을 만들고 칠성재(七星齋)를 지내면서 칠성대(七星臺)라 불리었다고 전한다. 고종(高宗) 때에는 이규승(李奎承)이 광무(光武) 원년(元年)(1897)에 관음상(觀音像)을 새기고 불사(佛寺)를 일으켰다고 명문에 적혀 있다. 이 마애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자세에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양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의 옷을 입고 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었고 왼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같은 수인(手印)을 짓고 있다. 조선(朝鮮) 말기(末期) 불상으로 조각 솜씨는 특별하지 않지만 만약 명문에 있듯이 광무(光武) 원년(元年)(1897)에 조성된 관음상이라면 절대 연대를 가진 작품으로 특히 칠성신앙(七星信仰) 도량(道場)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마애여래좌상은 대부분 규모가 큰데 망경암마애여래좌상은 작다. 커다란 암반에 작은 규모로 조각하였다. 한마디로 아담하다. 자동차로 망경암 근처까지 간 후 적당한 공터에 주차하고 걸어갈 수 있다. 그런데 등산로와 같이 사용하고 길도 좁고 비탈져서 위험하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미리 주차장에 주차 후 걸어가는 것이..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1020000,31&queryText=((V_KDCD=21))%20<and>(((V_NO%20>=102)<and>(V_NO%20<=%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