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명승, 사적

서울 영은문 주초(사적33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 9. 20:42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모화관 앞에 세웠던 주춧돌이다. 개화기에 우리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다짐하는 의미로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면서 그 기둥을 받치던 밑돌인 주초만 남게 되었다. 모화관은 조선 태종 7년(1407)에 처음 세우고 모화루라 하였는데, 그 뒤 세종 12년(1430)에 모화관이라 이름을 바꾸고 그 앞에 상징적인 의미의 홍살문을 세웠다. 중종 32년(1537)에 홍살문보다 격식을 갖춘 형식의 문을 만들고 ‘영조문’이라 하였다가, 중종 34년(1539)에는 중국 사신의 건의로 영은문이라 이름을 고쳤으며, 연주문·연은문이라고도 하였다. 중종 때 만들어진 문은 1칸 규모이며 두 개의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우진각지붕을 얹었는데, 지붕은 청기와로 덮고 각종 동물 모양을 조각한 잡상을 배치하였다. 남아 있는 2개의 주초는 2단의 사각형 받침돌 위에 기둥처럼 길게 세워져 있다. 위에 놓인 받침돌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1896년 독립문이 세워지면서 주초만 그 앞에 세워두었는데, 1979년 성산대로 공사로 인해 독립문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사진촬영시 왜 독립문 앞에 커다란 돌기둥이 있나 했다. 이 돌기둥이 사적33호이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0330000,11&queryText=((V_KDCD=13))%20<and>(((V_NO%20>=32)<and>(V_NO%20<=%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