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천연기념물, 노거수

고양 송포 백송(천연기념물6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 24. 18:11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송포의 백송은 나이가 약 23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1.5m, 가슴높이 둘레 2.39m이다. 나무의 모습은 옆에서 보면 부채살처럼 퍼져 역삼각형으로 보이며, 다른 백송에 비해 나무껍질이 희지 않은 편이다. 이 나무의 유래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유하겸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사절로부터 백송 두 그루를 받아, 그 가운데 한 그루를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최상규(송포 백송의 소유자)의 조상에게 준 것을 묘지 주변에 심은 것이 크게 자란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당시 그곳에서 근무하던 최수원 장군이 고향에 오는 길에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중국에서 온 나무라고 하여 한동안 이 나무를 당송(唐松)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며,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알려주는 나무로 역사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수령(樹齡)은 23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1.5m, 가슴높이의 둘레가 2.39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16.1m, 남북으로 16.2m이다. 마을 입구 낮은 언덕 길가에 서 있으며 길을 향하여 다소 기울어 있다. 뿌리 부근의 줄기지름은 65㎝, 50㎝로서 1.4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졌다. 갈라진 밑부분의 지름은 1.3m이고 서쪽 줄기의 밑부분 지름이 50㎝로서 50㎝ 정도 올라가서 아래 위 두 개로 갈라졌다. 그리고 다시 3개씩 갈라져서 퍼졌다. 동북쪽 가지는 서쪽 가지보다 굵으며 65㎝ 정도 올라가서 다시 2개로 갈라졌는데 밑부분의 지름은 40㎝ 및 60㎝이다. 이 중에서 큰 가지는 밑에 잔가지가 붙었고 50㎝ 정도 올라가서 5개로 갈라진 것 중에서 2개는 죽었다. 작은 가지는 밑에서 잔가지가 1개 갈라지고 다시 2개로 갈라졌다. 수형(樹形)은 옆에서 보면 측삼각형(側三角形)이며 가지는 부채살처럼 퍼졌다. 이 나무의 유래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유하겸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사절로부터 백송 두 그루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 한 그루를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최상규(송포 백송의 소유자)의 조상이 다시 받아 묘지 주변에 심은 것이 크게 자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도절제사(都節制使) 김종서(金宗瑞)가 개척한 육진(六鎭)에서 복무하던 최수원 장군이 귀향 길에 갖고와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당송(唐松)이라고 불렀다. 동쪽에는 묘지(墓地)가 있고 마치 산신나무처럼 자라왔으며 약간 떨어진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의 수령(樹齡)은 550년이라고 하며 높이 20m, 가슴높이의 둘레 4.9m이다. 백송이 서 있는 북쪽에는 상수리나무, 소나무 등이 자라고 밑에는 억새, 땅비싸리 등이 자라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송포 백송은 고양예술고등학교에서 8시 방향으로 직선거리 450여m에 있다. 백송이 있는 곳은 덕이동 구도시에 있어 길이 좁은 골목길이다.

 

 

 

 

 

 

옆에서 보면 마치 부채살 같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6,00600000,31&queryText=((V_KDCD=16))%20<and>(((V_NO%20>=60)<and>(V_NO%20<=%2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