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삼릉중 하나
영릉 : http://blog.daum.net/dbsqkqh/1706
순릉 : http://blog.daum.net/dbsqkqh/1707
한명회(http://blog.daum.net/dbsqkqh/5382)의 가족관계
정실부인 : 황려부부인 여흥 민씨 - 증의정부우의정 민대생의 딸, 단종비인 정순왕후의 어머니인 여흥부부인과 친사촌지간
장남 : 낭성군 한보(1447~1522)
장녀 : 한씨-고령부원군 신숙주의 장남 신주(1435~1456)의 처
차녀 : 한씨-영천부원군 윤사로의 장남 영천군 윤반의 처. 슬하 2남 5녀
삼녀 : 장순왕후(章順王后, 1445~1461, 공릉) : 조선 제8대 국왕 예종의 정비
사녀 :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 : 조선 제9대 국왕 성종의 정비
큰사위, 삼녀, 사녀가 일찍 사망한다.
조선왕릉 중 참도가 유일하게 꺾인 릉
조선 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1445∼1461)의 무덤이다.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딸로 1460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죽었다.
공릉은 처음에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무덤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은 없다. 다만 양석과 둘레돌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문인석의 옷주름 등이 조선초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서툴게 만들어졌다.
순릉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1456∼1474)의 무덤으로 공혜왕후는 왕비로 봉해진 후 5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무덤 밑둘레에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고 양석, 호석, 망주석 등의 석물이 서 있다. 난간석에 표현된 작은 기둥은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을 본받은 것으로 조선 초기 무덤에 쓰인 석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릉은 죽은 후에 왕으로 봉해진 영조의 첫째 아들 효장세자와 부인인 효순왕후(1715∼1751)의 무덤이다. 왕릉과 비릉은 쌍릉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은 세우지 않았으나, 석상을 앞에 두었다. 장명등은 중간에 배치하였으며 무덤 밑둘레에 양석과 호석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무덤 아래의 정자각은 영조의 명에 의해서 옛날 방식으로 세웠다.
공릉은 1층, 2층의 구분이 없으며, 무덤 아래에 있는 붉은 문에서 무덤에 이르는 길을 참도라 하는데 원래는 직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일반적인 예이나 이 무덤은 지형조건에 의해서 중간지역에서 꺾였다. 중간지역이 꺾인 참도는 조선왕릉 중 공릉뿐이다.(출처 : 문화재청)
8대 예종의 비인 장순왕후(공릉)와 7대 성종의 비인 공혜왕후(순릉)는 칠삭동이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이다. 한명희는 수양대군 세조의 장자방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이되는데 일등공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딸 모두 단명하였다. 문화재청 안내에서 1~2줄은 파주 삼릉의 설명으로 착각된다. 처음을 '공릉은 조선8대~~~'로 해야 좋을 듯.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민원담당 류X이입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사랑 감사드립니다. 윤XX님께서 알려주신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파주삼릉 안내문안 오류는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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