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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귀산리만경노씨삼의사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23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3. 4. 13:11

 노씨 3의사로 불리는 노응환과 그의 형제인 응탁, 응호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노응환은 조선 선조 때 의병으로 호는 수암이다. 봉사 세득의 아들이며 조헌의 문인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조헌을 따라 의병에 자원하여 청주에서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어 금산싸움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조헌 및 칠백의사와 함께 전사하였다. 그의 형제인 노응탁과 노응호가 함께 의병장 조헌 휘하에서 활약하여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우고 금산싸움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최후를 마쳐, 3형제의 유해가 금산 칠백의총에 묻혀 있다.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는 노응환, 응탁의 충신 정려문이 있고 반촌리에는 노응호의 정려문이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충정의 뜻을 기려 선조 37년(1604) 나라에서 벼슬을 내리고 정려문을 세우게 한 것이 지금껏 전해 내려오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안내에 노응호 정려가 반촌리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공주귀산리만경노씨삼의사생가지에도 있다. 정려가 두곳에 있는 것인지 옮겨온 것인지...문화재청에 문의했네요.

 

 

답변 : 귀 가정의 평안과 화목을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귀하께서 건의하신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 중 도 기념물 제23호 공주 귀산리 만경노씨 삼의사 생가지에 대한 내용을 수정하였음을 회신드리며 앞으로도 우리 도의 문화재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공주귀산리만경노씨삼의사생가지는 공주IC 북쪽에 있는데 공주TC에서 나와 천안 방향으로 백제큰길 따라 380m 정도 북진하면 반촌천 금암교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된다. 이때 다리를 건너도 되고 건너지 않아도 된다. 반촌천 둑길을 따라 1.5km 정도 가면 공주귀산리만경노씨삼의사생가지가 있다.

 

 

 

 

 

 

 

노응환, 노응탁 정려

 

 

 

 

 

삼의사와 삼의사순의비. 현장 안내판을 보면 삼의사 옆에 있는 4번인 삼의사순의비가 신도비로 되어 있는데

 

 

신도비는 혹시 이것이 아닌지....

 

 

 

 

 

노응호 정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230000,34&queryText=((V_KDCD=23))%20<and>(((V_NO%20>=23)<and>(V_NO%20<=%2023)))

 

 

 문화재청의 내용이 이렇게 바뀌었네요.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전사한 노씨 3의사(義士)로 불리는 노응환(盧應晥), 노응탁(盧應晫), 노응호(盧應皓) 3형제가 출생한 곳이다. 노응환?노응탁 형제는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을 따라 청주성 전투와 금산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금산에서 순절하였다. 순조 31년(1831) 증직(贈職)과 함께 명정(銘旌)을 받아 이곳에 정려를 건립하였다. 노응호는 19세의 나이로 두 형을 따라 청주성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조헌의 명으로 호서지역의 군량을 모으기 위해 진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군량을 모아 금산으로 갔을 때는 이미 두 형을 비롯한 칠백의사가 모두 장렬히 순절한 뒤였으므로 형들의 시신을 찾아 고향에 안치한 직후 세상을 떠났다. 고종 29년(1892)에 명정(銘旌)을 받아 우성면 반촌리에 정려를 건립하였는데, 1982년 삼의사를 세우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였다.(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