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중요-시도 민속문화재

남원 교룡산성승장동인(전라북도 민속문화재2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7. 1. 22:15

  승려 처영에게 하사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처영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하사하였다. 도장은 산성내의 선국사 주지에게 대대로 전해내려 오다, 동학혁명군 김개남이 교룡산성을 본거지로 활동할 때 잃어버렸던 것을 1960년 당시의 주지였던 보월 스님이 발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로 6.3㎝, 세로 7.8㎝, 두께 1.5㎝의 크기로, ‘교룡산성승장인(蛟龍山城僧將印)’이라는 7글자를 세로로 2줄 새겨 놓았다. 직사각형의 원판에는 높이 6.5㎝의 손잡이가 달려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경에 만든 것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동인을 보관해오던 본래의 함은 사라지고 없다. 숭장동인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 승 처영(僧 處英)이 교룡산성(蛟龍山城) 승병장:일명 산성별장(僧兵將 : 一名 山城別將)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는데, 이때 조정에서 산성별장의 병부로써 이 동인(銅印)을 새겨 보낸 것이다. 이후 승장인(僧將印)은 대대로 선국사 주지에게 전해오다가 동학혁명군 남접(南接) 수령(首領) 김개남(金開南)이 교룡산성을 본거지로 활동할 때 유실되었다가, 1960년 보제루(普濟樓) 마루장 밑에서 당시의 주지 보월)寶月) 스님이 발견하였다. 현재 승장동인을 보관해둔 본래의 함(函)은 없어졌으나, 동인은 자획(字劃)의 손실이나 탈락 없이 원형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이 동인의 크기는 가로 6.3㎝, 세로 7.8㎝, 두께 1.5㎝의 장방형의 원판에 높이 6.5㎝, 두께 0.7㎝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 동인에 교룡산성 승장인(蛟龍山城 僧將印)이라는 7자의 글자가 전서체로 정교하게 세로 2줄로 새겨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사진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4,00270000,35&queryText=((V_KDCD=24)) <and>(((V_NO >=27)<and>(V_NO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