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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21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8. 19. 18:24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태조 19년(936) 격전지에다 세운 사찰이다. 이 삼존석불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둥글지만 평면적이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어깨와 가슴은 투박하게 만들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왼손은 배에 대어 무엇을 잡은 것처럼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둔중하다. 왼쪽의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본존불보다 조각이 화려하고 섬세한 편으로, 어깨와 가슴이 좀더 부드럽고, 팔찌와 천의(天衣)자락에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왼쪽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얼굴이 역사다리꼴이고, 목에는 두터운 삼도(三道)가 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 다소 두꺼워진 천의와 선으로 새긴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보다 진전된 고려 초기의 새로운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이며, 고려 초기 지방 석불상으로는 우수한 작품에 속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개태사(開泰寺)는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후백제(後百濟)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태조 19년(936)에 격전지에다 창건한 사찰이다. 이 삼존석상(三尊石像)은 그 당시에 조성한 주존불(主尊佛)로 추정된다. 이들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本尊佛)은 얼굴에 비해서 눈과 귀가 다소 크고 길게 표현 되었으며, 거의 원통형에 가까운 체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져 다소 부자연스럽다. 탄력이 감소된 신체굴곡, 크게 표현된 손과 발, 사각형으로 깎아 발가락만을 선각(線刻)으로 표현한 양 다리 등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좌우의 보살상(菩薩像) 역시 본존과 동일한 수법이나 어깨와 가슴이 좀더 부드럽고 팔찌와 상의(裳衣)에는 비교적 섬세한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는 지방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불상이지만 제작 시기가 거의 확실하고, 고려의 후삼국통일의 의지가 담겨 있으며, 고려(高麗) 전기(前期) 지방 석불상으로서는 수작(秀作)에 속하고 있어서 이 삼존불상의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2190000,34&queryText=((V_KDCD=12)) <and>(((V_NO >=219)<and>(V_NO <=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