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중요-시도 민속문화재

강릉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5호) 1

천지연미소바위 2012. 9. 2. 15:33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700년 이전에 건립된 안채는 이내번이 지었으며,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열화당은 사랑채로서 순조 15년(1815)에 이후(李厚)가 세웠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으로 위치한 넓은 인공연못에 서 있는 활래정은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지었다.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마루가 연못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집 밖의 활래정과 함께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1대손인 무경 이내번(茂卿 李乃蕃)이 명기(名基)를 얻어 개기(開基)한 이래 누대(累代)가 세거(世居)하였는데 가전(家傳)하는 바에 따르면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은 순조(純祖)15년(1815)에 오은거사 이후(鰲隱居士 李厚)가 건립하고 연지(蓮池)의 활래정(活來亭)은 순조 16년(1816)에 이근우(李根宇)가 조영하였다고 한다. 6·25때 일부 피해를 입었으나 이후 복구하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강릉에서 경포대로 나가자면 왼편 산기슭에 큼직한 집이 보인다. 새로지은 건물인데 그 집을 목표로 삼고 다가가면 형국이 짜여진 명기(名基)가 나서고 거기에 장대한 규모를 갖춘 선교장(船橋莊)이 있음을 알게된다. 어구(於口)에 들어서면 우측에 연지가 있다. 지중(池中)에 당주(當洲)가 있고 잘생긴 소나무가 섰다. 그 건너편으로 지반(池畔)에 세운 한쌍의 정자가 보인다. 활래정이다. 잘자란 소나무 숲이 정자의 배경이 된다. 길을 따라 더 들어가면 좌측으로 능선이 에워싼 터전이 열리는데 거기에 농경(農耕)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초즙(草葺)의 소옥(小屋)들이 있다. 다시 더 들어가다 문득 바라다 보면 나지막한 배산(背山)아래 양명(陽明)한 터를 골라 개기(開基)하였는데 장대한 바깥 행랑채가 눈을 끈다. 그 중간 쯤에 솟을대문이 열렸다. 대문과 행랑채는 높직이 쌓은 석대(石臺)위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 앞쪽으로 경사가 급한 답도(踏道)가 대문폭만큼의 넓이로 축조되어 있다. 수레나 사인교(四人轎)등의 출입을 쉽게 하기 위하여 층층다리 대신에 설치한 것이다. 내정(內庭)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가로막는 건물이 있다. 안채의 서쪽편에 있는ㄷ형 평면의 서별당이다. 안채는 이집 보다 높은 기단 위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대청을 중심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을 배설(排設)한 당당한 규모의 건물이다. 안채의 동편에 동별당(東別堂)이 있는데, 안채보다 한단 낮은 위치에 있다. 역시 대청이 중심에 있는 배치법을 응용하였는데 ㄱ자형의 평면이다. 이들은 안채의 일곽이 된다. 행랑채와의 사이에 있는 샛담의 일각문을 나서야 서쪽편의 사랑채 쪽으로 갈 수 있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앞쪽에 동판(銅板)을 너와처럼 이은 차양 시설이 있어서 주목된다. 세벌대 높은 댓돌 위에 있어서 층층다리를 올라서야 들어서게 된다. 一자형이나 겹집형태의 평면이다. 강원도다운 특색을 보이는 구성이다. 그러나 사랑채답게 넓은 대청을 강조하는 구조로 완성하였다. 넓은 평면에서 방은 3칸일뿐 나머지는 모두 판상(板床)이고 그중 1칸은 내루(內樓)처럼 갖추어졌다. 이 집에는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이 있어서 옛날 제택(第宅)에 사는 이들의 생활 관습과 금도(襟度)를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민속문화재5-4호인 활래정

 

 

 

 

 

 

 

 

 

 

 

 

 

 

 

 

 

중요민속문화재5-3호인 동별당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050000,32&queryText=((V_KDCD=18)) <and>(((V_NO >=5)<and>(V_NO <= 6)))&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