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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팽성읍객사(경기도 유형문화재13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0. 4. 14:14

  팽성객사는 조선 성종 19년(1488)에 크게 지었으며, 그 후로 2번의 수리를 거쳤다. 일제시대에는 양조장으로 바뀌었다가 주택으로 사용되었는데, 1994년 해체·수리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 있다. 본채는 전체 9칸으로 가운데 3칸은 중대청이고 양 옆에 동·서헌이 각각 3칸씩 있다. 중대청은 안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관리들이 한달에 두번 절을 하던 곳이다. 이곳은 지붕도 동·서헌보다 높여 건물의 격식을 높였다. 동·서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되었다.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 꼭대기 양끝에는 용머리조각을 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팽성읍 객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객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朝鮮時代) 팽성현(彭城縣)의 객사로, 원래는 작은 규모였던 것을 현종(顯宗 : 1659~1674)때 크게 중창(重창)하였고 다시 영조(英祖) 36년(1760)에 중수(重修)하고, 순조(純祖) 1년(1801)에 또 다시 중수(重修)한 것이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있는데, 본채는 전체 9칸 가운데 3칸은 중대청(中大廳)이고 좌·우에 동·서헌(東·西軒)이 각각 3칸씩이다. 중대청은 안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고을 수령이 한달에 두번 배례(拜禮)를 올리던 곳으로, 이곳은 굵은 원형 기둥에 초익공(初翼工)을 결구(結構)하고 지붕도 동·서헌보다 높여 건물의 격식을 높혔다. 동·서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官吏)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되었다. 대문간채의 중앙에 1칸의 대문이 있는데 솟을 지붕으로 꾸몄다.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용두(龍頭)를 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1370000,31&queryText=(`팽성읍객사`)<in>z_title&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