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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영산전(보물80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0. 9. 20:23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앞쪽에 걸린 현판은 세조의 글씨라고 하며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보물800호인 마곡사 영산전인데 얼마전에 다시 찾아가니 보수중이네요.

 

 

 

 

 

 

 

 

 

  수양대군 세조가 김시습이 마곡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김시습이 미리 알고 부여 무량사로 피신하여 만나지 못하고 영산전이라는 현판을 쓰고 가마까지 놓고 돌아 갔다. 왼쪽 위에 세조대왕어필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영산전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는데 현판은 세조가 쓴것인지 아니면 누가 다시 쓴것인지? 임진왜란 시 영산전이 소실될 때 현판을 피신시켰는지?

문화재청(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1350000,34&queryText=((V_KDCD=21)) <and>(((V_NO >=135)<and>(V_NO <= 135)))&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에 '세조(재위 1455∼1468)가 이곳에 와서 `영산전´이라는 편액을 직접 써서 내렸고 잡역을 면제하는 교지를 내렸는데 모두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졌다.'라고 되어 있는데 앞뒤가 안맞네요.

 

다음 사진들은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마곡사 근대불화를 만나다'(2012.9.27~2012.12.9)에서 촬영한 것임. 

 

 

 

답변 : 안녕하십니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는 보물 제800호 공주 마곡사 영산전의 현판인 “靈山殿”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하는데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된 영산전 현판에는 왜
세조대왕어필이라고 각이 되어있는지 문의하여 주셨습니다.
⇒ 현재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영산전 현판은 고증이나 문헌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시대를 확인하기는 힘들며, 후대에 사찰에서 복원하면서 세조가 내린 현판이라는 역사성을 담기위해 현판에 세조대왕어필이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산전에 모셔진 나한상 중 일부

 

 

 

영산전에 천불상과 함께 모셔진 과거칠불

 

 

 

 

영산전에 봉안된 천불상 일부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8000000,34&queryText=((V_KDCD=12)) <and>(((V_NO >=800)<and>(V_NO <= 800)))&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