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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중동석조(보물148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0. 22. 21:38

  국립공주박물관 정원에 있는 백제시대 석조로, 사찰에서 연꽃을 담아 장식했던 것이다. 원래는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 터에 공주 반죽동 석조(보물 제149호)와 함께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말구유로 쓰기 위해 옮겨가 제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1940년 이 곳으로 옮겨올 당시 중동초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동석조’라 부르게 되었다. 규모에 있어서 반죽동 석조보다 약간 작을 뿐 양식이나 조각 수법이 동일하여, 어느 한 건물 앞에 한 쌍으로 두기 위하여 동시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믿어진다. 석조를 받치고 있는 받침 기둥은 일본군에 의해 깨어져 없어지고, 이후 반죽동 석조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원기둥에 연꽃을 둘러 새긴 모습이다. 석조는 굽이 높은 사발 모양으로 입구 가장자리에 굵은 돌기를 돌렸다. 바깥 면에는 2줄의 작은 띠를 돌려 새기고, 띠 위에 일정하게 연꽃을 장식하였는데 반죽동 석조에 비하여 많이 닳지 않아 문양이 훨씬 뚜렷하다. 대통사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성왕 7년(529)에 창건된 사찰이므로, 이 석조는 그 제작년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백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석조의 형태나 연꽃무늬는 백제의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그 가치는 반죽동석조와 아울러 높이 평가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1940년에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라니??? 1940년에 이곳으로 옮겨 온것이 아니라 구 국립공주박물관(현 충청남도역사박물관)으로 옮겼다가 국립공주박물관이 무령왕릉 근처로 이사오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온 것입니다.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 안녕하십니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재검색란의 보물 148호 「공주 중동 석조」 관련 내용 오류 지적은 아래와 같이 수정하였습니다. 
1940년 이곳으로 옮겨올 당시 중동초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동석조’라 부르게 되었다.
⇒ 1940년 공주박물관으로 옮겨올 당시 중동초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중동석조’라 부르게 되었다.

 

 

 

 

  국립공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2개의 석조가 있는데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 것이 중동석조이고 왼쪽에 있는 것이 보물149호인 반죽동석조이다. 안내판을 보면 어느 것이 중동석조이고, 반죽동석조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박물관 직원에게 관광객이 쉽게 구별할 수 있게 안내판을 수정해달라고 했는데 반영은 할런지... 또 대부분 박물관이 그런데 문화재 안내에 국보XX호, 보물**호 등 글씨가 노란색이고 실내가 어두워 글씨가 잘 안보인다. 이것도 참고해달라고 부탁했음.

 

 

 

 

  뒤에서 본모습인데 크게 보수한 석조가 중동석조이다. 일제시대에 일본군들이 말구유로 사용하기 위해 말이 먹이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한쪽을 파손시켰단다.

 

 

 

 

 

중동석조는 이렇게 많이 훼손되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1480000,34&queryText=((V_KDCD=12)) <and>(((V_NO >=148)<and>(V_NO <= 149)))&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