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문경 옥소권섭영정(경상북도문화재자료34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2. 2. 21:31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옥소 권섭(1671∼1759) 선생의 초상화이다. 권섭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연구에 힘쓴 인물로, 시와 그림에 열중하였으며, 훗날 통덕낭·가선대부 등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초상화는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슴위 까지만 그려 놓은 흉상이다. 조선 경종 4년(1724) 도화서 화원이었던 이치가 그렸으며, 그림을 보고 선생이 직접 글을 짓고, 동생 권영이 글씨를 써 놓았다. 전체적으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음영이 분명하지만, 1992년 경 일부분을 고쳐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영정을 보관하는 영각은 1985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 영정은 1724년(경종 4년) 도화서(圖畵署) 화원 이치(畵員 李治)가 그린 권섭(權燮)(1671∼1759)의 영정(影幀)으로 견본담채(絹本淡彩)의 팔분면흉상(八分面胸像)이다. 찬(贊)은 권섭(權燮)이 지었고, 서자(書者)는 그의 동생 권영(權塋)이다. 권섭(權燮)(1671, 현종 12년∼1759, 영조 35년)은 본관(本貫)은 안동(安東), 자(字)는 조원(調元), 호(號)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이며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조카이다. 그는 사환하지 않은 채 향리에 은거하면서 학문의 연구에 힘썼다고 하며 문경현(聞慶縣) 신북면(身北面) 화지동(花枝洞)에 은거(隱居)하면서 시화(詩畵)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후일(後日) 통덕낭(通德郎), 가선대부(嘉善大夫) 등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영정(影幀)을 보관(保管)하는 영각(影閣)은 1985년에 건립되었다. 개장(改粧)하기 전(前)의 사진본(寫眞本)에 의하면 영정(影幀)은 전체적(全體的)으로 온전히 보존(保存)되어 있어 음영이 분명하지만 1992년경에 개장(改粧)을 가해 원래의 모습을 잃고 있다. 전적(典籍)인 『옥소고(玉所稿)』4책(冊)은 권섭이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묵화로 묘사하고 이를 시문으로 읊은 것으로 상태는 양호하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에는 문경읍 당포리 184(http://blog.daum.net/dbsqkqh/3012)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영정은 문경 옛길박물관(구 문경새재박물관, http://www.oldroad.go.kr/main.htm)에서 촬영한 것이다. 전에는 문경읍 당포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옛길박물관에 위탁 보관한단다.(http://blog.daum.net/dbsqkqh/3012)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3490000,37&queryText=((V_KDCD=31)) <and>(((V_NO >=349)<and>(V_NO <= 349)))&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