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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97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2. 7. 19:12

  서혈사터에서 출토된 3구의 불상 중 하나이다. 서혈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작은 규모로 운영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본격적인 사찰로 운영되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약간 길고 눈·코·입 등은 아주 작게 표현되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두께가 얇아보인다. 옷주름은 배부분에서 곡선을 그리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가는 평행선이 약한 느낌을 준다. 앉은 자세는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하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아래로 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되어있는데, 상대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하대에는 연꽃을 엎어놓은 모양을 새겨 넣고 있다. 활기차고 생동적인 면이 사라지고, 세부조각, 특히 옷주름의 표현에 있어 도식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현재 충남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서혈사의 좌상(坐像)들은 광배(光背)가 없거나, 머리를 잃고 있는 것 등도 있지만 마모가 심하지 않아 그 세부조각기법을 잘 알아볼 수 있다. 3점 가운데 광배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항마촉지인상(降魔觸地印像)은,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肉 )가 표현되어 있지 않으며 상호(相好)는 원만하나 눈 ·코 ·입 ·귀 등이 아주 작게 표현되었다. 두께가 얇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그 옷주름이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얇게 표현되어 평판적(平板的)이고 섬약한 느낌을 준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발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하여놓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걸쳐 다섯손가락을 아래로 한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좌대(座臺)는 상 ·중 ·하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대(上臺)에는 앙련(仰蓮), 하대(下臺)에는 복판복련(複瓣伏蓮)이 돌려졌으며, 8각의 중대석(中臺石)에는 각 면에 모서리 기둥이 모각되어 있다. 이밖에 머리와 중대석을 잃고 있는 항마촉지인상이 있는데 이 상(像) 역시 앞의 것과 거의 유사하나 신체표현에 있어 어깨가 꽤 넓고 가슴, 무릎 등에 다소 중량감이 있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전대(前代)에 보였던 활기차고 생동적인 면은 사라지고, 세부조각 특히 의문(衣紋)에 있어서 섬약한 면이 드러나고 도식화의 경향이 엿보여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하겠다.(출처 : 문화재청)

 

 

  서혈사지 출토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좌상(http://blog.daum.net/dbsqkqh/2902)이 보물148인 중동석조 옆에도 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9790000,34&queryText=((V_KDCD=12)) <and>(((V_NO >=979)<and>(V_NO <= 979)))&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