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명승, 사적

괴산 송시열묘 및 신도비(사적41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2. 30. 20:03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무덤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근처의 암벽에 ‘충효절의’·‘비례부동’이란 글을 새긴 곳이 많이 있다. 송시열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일 뿐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서, 한때는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곳이다. 민족 정기회복을 위한 교육 장소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이다. ※(괴산우암송시열유적 → 괴산 송시열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화양서원지(華陽書院址)는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지(萬東廟址)는 중국 명나라 황제(신종(神宗),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서 유지가 잘 남아 있고, 동 화양서원지 및 만동묘지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묘소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주변의 암벽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비례부동(非禮不動)등 많은 애각(崖刻)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곳일뿐만 아니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왜곡파괴되었던 곳으로서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교육장소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이다.(출처 : 문화재청)

 

사적417호 중에서 우암 송시열 묘와 신도비이다.

 

 

 

보이는 건물이 사당이고

 

 

신도비 누각 

 

 

사당

 

 

 

보호수 은행나무

 

 

 

 

신도비.

 

 

 

 

우암 송시열 묘는 이 신도비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있다.

 

 

 

 

 

 

 

 

 

 

 

  우암 송시열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국 곳곳에 흔적이 있다. 많은 분들의 묘비도 짓고, 글씨를 남겼다. 우암 송시열은 동춘당 송준길, 미촌 윤선거, 시남 유계, 초려 이유태와 함께 충청5현 중 한사람이다. 특히 우암 송시열 선생은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다. 송시열 사위가 본인의 직계 할아버지이다.(http://blog.daum.net/dbsqkqh/4037) 그러나 노론인 송시열과 소론인 우리 집안의 당파 싸움으로 할머니는 친정으로 가셨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4170000,33&queryText=((V_KDCD=13)) <and>(((V_NO >=417)<and>(V_NO <= 417)))&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