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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김종서장군묘(구 충청남도 기념물16호, 세종특별자치도 기념물2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 29. 15:21

종 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6호

명 칭 : 김종서장군묘 (金宗瑞將軍墓)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 1기 (9,332㎡)

지정(등록)일 : 1977.01.06

해 제 일 : 2012.07.01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 산45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순천김씨종중

관리자(관리단체)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김종서장군묘에 대한 설명입니다. 세종시 승격에 따른 해제

  김종서 장군의 본관(本貫)은 순천(順天)으로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함길도도관찰사(咸吉道道觀察使)가 되어 야인(野人)들의 궁경침입을 격퇴하고 6진(六鎭)을 설치하여 두만강(豆滿江)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선(國境線)이 이때에 확정되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편찬하기도 했다. 단종(端宗)이 12세로 왕위에 오르자 좌의정(左議政)으로 어린 왕을 보필하다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首陽大君)에 의해 단종(端宗) 원년(1453)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이것이 계유정란(癸酉靖難)으로 제1차 희생자가 되었다. 무덤 앞에 있는 오래된 묘비(墓碑)는 영조(英祖) 24년(1748)에 세운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충청남도 기념물16호였던 김종서장군묘는 지역이 세종특별자치도로 승격됨에 따라 해제되고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2호로 되었지요. 주소도 장군면 대교리 산45으로 바뀌었지요.

 

 

 

 

  입구에 있는 정려는 김종서와 두 아들의 충신 정려라기 보다 앞면을 보면 김승규의 효자 정려네요. 문화재청에 넘어진 소나무와 함께 민원했네요. 현장 안내판에 충청남도 기념물16호로 되어 있고요.

 

 

 [답변내용] : 1.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김종서 장군 묘는 2012년 7월 1일자로 공주시에서 세종특별자치시로 이관된 문화재로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2호로 지정관리 되고 있습니다.
3. 귀하께서 건의한 김종서 장군 안내판의 내용은 “김종서와 두 아들”이 아닌 “김종서와 그의 아들 김승규”의 정려가 맞음을 알려드립니다.
4. 아울러, 안내판의 내용 수정은 세종시에서 2013년 문화재 안내판 제작 및 보완 설치사업시 수정코자 하며, 궁금한 사항은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체육관광과 담당자(☎ 044- 300-34XX)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끝.

 

 

 

공주에서 세종시로 가다가 한다리 건너자 마자 왼쪽으로 간다.

 

 

 

 

관리동과 정려가 보이고 김종서 장군묘는 소나무 숲속에 있다.

 

 

관리동.

 

 

 

 

 

 

 

정려 뒷면

 

 

 

 

누구의 묘인지 모르지만 올라 가는 길 좌측에 있다.

 

 

 

언제 넘어졌는지 소나무가 길을 막네요.

 

 

 

 

 

 

 

 

샛길로 가려니 여기도 소나무가 막고있네요.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160000,34&flag=Y

 

 

김종서 장군 묘(세종특별자치도 기념물2호)

  조선 단종 때의 충신인 절재(節齋) 김종서(1383∼1453) 장군의 묘소이다. 태종 5년(1405) 문과에 급제한 후 함길도 도절제사 등 여러 관직을 엮임하였다. 세종 16년(1434)에 6진을 개척하여 국토 확장의 위업을 이룩하여 현재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선이 이때에 확정되었다. 또『고려사』,『고려사절요』,『세종실록』등의 편찬에 참여하여 학자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단종이 12세로 왕위에 오르자 좌의정으로 어린 왕을 보필하다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뒤의 세조)에 의해 단종 1년(1453)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현재의 묘비와 ‘忠臣旌閭(충신정려)’의 현판은 영조 22년(1764)에 세운 것이며, 묘역은 약 200평으로 둥근 담과 삼문시설은 근래에 설치한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정인지(http://blog.daum.net/dbsqkqh/3265), 김종서 두 분 모두 세종대왕에게 신임이 두터웠는데 한분은 세조인 수양대군에게 죽고 다른 분은 영의정까지 하고... 어느 분이 충신이고, 어느 분을 본 받아야 하는지????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23,00020000,45&query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