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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염걸장군묘소(전라남도 기념물3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4. 13. 23:17

 

 

번지가 시골 산번지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여러번 되돌아오고, 주민께 물어서 겨우 찾아갔다.

 

 

오른쪽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주택 옆 왼쪽 길로 간다.

 

 

염걸장군묘소 입구 마을에 있는 노거수

 

 

왼쪽으로 간다.

 

 

오른쪽으로 간다. 본인은 왼쪽으로 가서 주민에게 물어서 찾아 갔다.

 

 

멀리 염걸장군묘소가 보인다.

 

 

 

아들 염홍립묘소

 

 

 

염걸장군 묘소

 

 

 

동생 염서묘소

 

 

동생 염경묘소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염걸 장군의 묘이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글 재주가 뛰어나고 힘이 세었으며 크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그 재주가 비범하였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 나가 왜구를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후 이순신 장군 아래 들어가 몰운대(歿雲臺) 전투에서 공을 세워 수문장(守門將)에 올랐으나, 거제도 해전에서 왜구에 맞서다 전사하였다. 선조는 장군이 전사한 후 병조판서로 벼슬을 높여주었다. 묘역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에 있으며 봉분은 높이 1.5m 둘레 15m이다. 이곳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큰 공을 세운 염걸 장군의 묘이다. 장군은 조선(朝鮮) 인종(仁宗) 원년(1545)에 칠량(七良)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글재주가 있고 힘이 몹시 세더니 성장하면서 말타기와 활소기를 익혀 당할 이가 없었다. 선조(宣祖) 25년(1592) 9월 의병(義兵)을 일으켜 구십포(九十浦)에 출전(出戰)하여 허수아비 수백개를 만들고 포고문(布告文)을 발사(發射)하여 왜적이 이를 보고 후퇴하는 것을 정수사(淨水寺)에 매복(埋伏)하였다가 대파(大破)하는 큰 공을 세웠다. 장군은 다시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의 막하(幕下)에 들어가 역전(力戰)하여 의병장이 되었고, 몰운대(沒雲臺)전투에서 다시 큰 공을 세워 수문장(守門將)에 이르렀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거제도해전(巨濟島海戰)에서 백병전을 펴다 적탄에 의해 숨졌다. 이후에 선조대왕은 장군에게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추증(追贈)하였다. 묘역(墓域)은 약 83㎡(25평), 봉분의 높이 1.5m, 둘레 15m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360000,36&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