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비는 조선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1807)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비이다. 조선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 능인 화성의 현릉원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으레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이곳을 떠나기를 아쉬워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의 비문은 홍문관제학 서영보가 짓고, 윤사국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가 전액을 썼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비는 조선(朝鮮) 정조(正祖)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고 본받기 위하여 순조(純祖) 7년(1807)에 화성어사(華城御史) 신현(申絢)이 건립하였다. 정조가 때때로 부왕(父王)의 능침인 화산릉(華山陵)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화산릉을 바라볼 수 없게 되므로 으레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게 하고 화산릉을 뒤돌아보며 이곳을 떠나기를 아쉬워 하였기 때문에 대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 하여 이곳의 이름을 한자(漢字)의 느릴 지(遲)자 두자를 붙여 지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지지대비는 수원에서 의왕으로 넘어가는 지지대고개 정상 왼편에 있다. 가까이에 건널목이나 인도가 없어 수원 사람도 자전거나 보행으로 찾아가기가 어렵다. 의왕 쪽에서 지지대고개를 넘어오다 보면 오른쪽에 쉼터가 있는데 이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100m정도 뒤돌아 걸어가면 된다. 맞은편에는 수원에서 북수원 IC에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수원에서 자전거나 걸어서 가려면 멀리 돌아 오거나 무단횡단을 해야한다.
지지대비 맞은 편에 있는 북수원IC 들어가는 입구.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240000,31&queryText=((V_KDCD=21)) <and>(((V_NO >=24)<and>(V_NO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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