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연천 평정공윤호신도비(경기도 문화재자료13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6. 30. 20:25

  성종은 수양대군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와 세자빈 한씨(소혜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지 두 달이 되기 전에 아버지인 의경세자가 20세로 죽자 할아버지인 세조가 궁중에서 키웠다. 세조의 뒤를 이어 숙부 예종이 즉위 14개월 만에 승하하자 1469년 왕위를 계승했다. 1494년 38세에 승하하기까지 재위 25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왕비 공혜왕후(칠삭동이 한명회의 딸) 승하 후 숙의 윤씨(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를 계비로 삼았다가 폐비 후 사약을 받게 하였다. 정현왕후 윤씨는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훗날 중종이 되는 진성대군의 어머니이다. 1479년 연산군의 생모인 숙의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현왕후는 원자인 연산군을 친자식같이 키워 친모로 착각했고, 성종의 묘지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현왕후 윤씨의 아버지 윤호를 윤기무로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고, 승지들로부터 윤기무와 폐비 윤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친어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현왕후릉(http://blog.daum.net/dbsqkqh/2366)은 파주에 있다.

 

윤호의 신도비는 한국전쟁 때 총탄의 흔적에 많이 훼손되어 있다.

 

 

 

문화재청에는 주소가 '미산면 아미리 산131-1'인데 현장 안내판에는 '미산면 아미리 산131-6이네요.  

 

 

 

  돌계단으로 조금 올라 가면 연천 향토유적6호인 영원부원군인 평정공 윤호묘(http://blog.daum.net/dbsqkqh/4180)가 있다.

 

 

 

비각의 주춧돌이 보인다.

 

 

 

 

 

 

 평정공 윤호(1424~1496)의 신도비는 도로변의 나지막한 구릉상에 남서향하여 위치한다. 신도비는 조각 기법이 탁월하여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건립 당시 비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한국 전쟁 중에 전소되어 4개의 주춧돌만 남아 있다. 신도비의 비좌는 백색 화강암으로 전후 9엽, 좌우 4엽씩 복련문이 있다. 비신의 전면에만 비문이 있는데, 한국전쟁 때 입은 수많은 탄흔으로 판독은 불가능하다. 이수는 검게 산화되어 있으나 운문속에 입을 벌려 혀를 널름거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매서운 눈, 턱 밑의 수염과 발톱이 세 개인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비 아래에는 하마비가 있다. 영원부원군 윤호는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이다. 자는 숙보이고 영천부원군 삼산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29) 생원시에 합격하여 군기시주부, 의금부도사, 신창현감, 밀양부사, 양주목사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472년(성종3) 춘장문과에 내과로 급제하여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그 이듬해 성종이 그의 딸을 왕비로 삼아 정현왕후가 되자 국구로서 영원부원군에 봉하여 졌다. 1488년 영돈녕부사에 이르고 이듬해 사복시제조를 겸하였다. 1495년(성종25) 우의정이 되면서 기로서에 들어가고 궤장을 하사받았으며, 다시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평소에 성품이 검소하고 교만함이 없었으며 외척으로서 세도는 추호도 찾을 수 없었다. 시호는 평정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137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