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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무학대사유허지(경상남도 기념물26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2. 6. 14:06

합천 무학대사유허지에 있는 무학당 표석

 

 

  합천 무학대사유허지에 2차로 답사를 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2차로 갔지만 실패하고 대지리로 되돌아 왔는데 막 출발하려는 자동차가 나를 기다리며 맞이 한다. 본인이 합천 무학대사유허지를 찾다가 실패하고 되돌아나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무엇을 찾아왔느냐 한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 분이 신고하여 합천 무학대사유허지로 문화재 등록되었다며 자세히 알려준다.

 

 

 

도로는 험하지만 자동차는 갈 수 있다.

 

 

 

 

 

 

조그만 소류지를 지나

 

 

 

처음에는 이곳이 무학대사 유허지 인줄 알고 왼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암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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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다 포기하고 대지리까지 갔다가 주민의 안내를 받고 다시 도전했다.

 

 

주민 안내대로 재차 도전하여 이곳 '대병면 대지리 496'까지 와서 주차한다.

 

 

 

 

주차 후 10여m 되돌아 나오면 험한 길이 있다.

 

 

이 길따라 계속 간다.

 

 

 

 

 

 

작은 언덕 넘어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이 잘된 곳으로 올라 간다.

 

 

유허지는 도로 왼편 건너에 있고 무학당 표지석은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합천군 대병면 대지리 산 2번지 일원은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16, 축대 배수로, 괘불지주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기와, 자기류등을 통해 볼 때 12세기에 건립되어 18세기까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17세기 초반에서 후반경에는 실체 사찰의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발굴결과 수차례에 걸친 수.개축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고려시대 전기에서 조선시대 후기에 걸쳐 운영된 사찰로 판단되고 있다.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 후기에 걸쳐 운영된 사찰로 판단되므로 각종 지리서에서 거리나 방향 등을 고려하여 대지리 폐사지에 비정할 만한 사찰을 찾아보면 寶巖寺舍那寺가 유력하다. 이 중 寶巖寺輿地圖書가 편찬되는 18세기 중반에 이미 폐사되었다 하므로 논외로 하고 이에 반해 舍那寺月如山 자락에 위치하고,輿地圖書』『三嘉縣邑誌佛宇條 嶠南誌舍那寺 在縣北五十里一名浮屠寺라고 하여 조선시대 말까지 법등이 전해지고 있었으며 그 방향과 거리도 일치하여 대지리 폐사지는 일단 사라사로 비정할 수 있다. 그런데輿地集成』『三嘉縣邑誌寺刹 舍那寺在黃梅山舞鶴所創이라 하여 무학이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무학당표석과 함께 대지리 폐사지가 무학대사와 관련이 있는 사찰임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며 지표조사를 통하여 무학대사 출생지로 고증된 대지리 마을 또한 보다 신빙성이 높아졌다고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발굴조사 자료와 각종 지리서에 나타난 기록, 春亭 卞季良妙嚴尊者塔銘와 같은 금석문을 통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는 삼가현 사람임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무학대사와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본 유적을 무학대사 유허지로 명명하여 지정.보존함.(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2690000,38&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