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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김덕함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14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7. 5. 22:37

  청백리인 성옹 김덕함은 12세의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곤궁한 가정에서도 스스로 문예에 힘썼다.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지조가 있었다. 김덕함은 효자로 어머니가 아흔이 넘도록 모시고 살았단다.

 

 

 

'적성면 무건리 산2번지'인 설마13교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주차한다. 김덕함묘의 안내판이 보인다.

 

 

 

철문이 막고 있다. 지인을 통해 알았던 군관계자에게 전화하니 통제구역이 아니란다. 적당히 들어 가란다.

 

 

 

 

 

왼쪽으로 길이 있는데 김덕함묘 가는 길로 착각하지 말기를....

 

 

직진이다.

 

 

사방댐 안내이다.

 

 

  우회전한다. 실은 근처에서 일하는 분을 만나 도움을 청했다. 만약 도움이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멀리 묘역이 보인다.

 

 

 

 

 

 

 

묘역 앞에 있는 신도비.

 

 

 

 

 

 

 

 

 

김덕함의 묘는 뒤에 있다.

 

 

김연묘인데 김덕함과 무슨관계인지 모르겠다.

 

 

 

 

 

 

묘비가 예사롭지 않다. 모서리에 용머리가 아닌지....

 

 

 

뒤에 있는 이 묘가 김덕함 묘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성옹(醒翁) 김덕함(15621636) 선생의 묘소이다. 어릴 때 부모를 잃었으나 스스로 학문에 힘써 선조 21(1588)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인조 14(1636)에는 대사헌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초토사 이정임을 도와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으며, 광해군 9(1617)에는 이항복·정홍익 등과 함께 인목대비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 남해로 유배되었다. 묘의 좌우로는 망주석(望柱石: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돌기둥)과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있다. 묘 아래쪽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우던 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유가 쓴 것이다. 부인인 경주 이씨와의 합장묘로 두 번의 이장(移葬)을 거쳐 현종 1(1660)에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144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