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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보물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5. 1. 2. 19:58

 

 

고달사지에 남아있는 귀부 및 이수는 1963년 보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초기 불교미술의 화려함을 대표하는 원종대사 혜진탑비는 1915년에 무너져 여덟 조각이 나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존되어 있고, 귀부와 이수는 보물 6호로 지정되어 고달사지 현장에 있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291cm, 너비 162cm, 두께 31cm이다. 귀부, 비신, 이수가 합쳐진 탑비의 원래 총 높이는 508cm이다.‘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에서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2 12 비신 복제  탑비 복원공사가 착공되었고 원래의 비신과 성분이 비슷한 석재로 북한 해주 화강암을 수입하였다. 3,230자를 정과 망치로 새겨 2014 9월 완성하였고, 2014. 10. 2914:00에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의 복원 준공식이 개최 되었다. 본인은 103일에 가보았으니 준공식 전이었네요.

 

 

복원하기 전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비(http://blog.daum.net/dbsqkqh/1103)

 

이제 멀리서도 복원된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가 보이네요.

 

 

 

오래된 비처럼 복원을 잘해 놓았네요.

 

 

 

 

 

 

 

 

 

 

 

 

 

 

 

 

 고달사터에 세워져 있는 비로,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958)90세로 입적하였다.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이름을 혜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으며, 이곳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매우 험상궂은 모습이다. 다리는 마치 땅을 밀치고 나가려는 듯 격동적이고, 발톱의 사실적 표현은 땅을 꼭 누르고 있는 듯하다. 목은 길지 않아 머리가 등에 바짝 붙어 있는 듯 하다. 등에는 2중의 6각형 벌집 모양이 정연하게 조각되었으며, 중앙부로 가면서 한 단 높게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첨가하여, 비를 끼워두는 비좌(碑座)를 돌출시켜 놓았다. 머릿돌은 모습이 직사각형에 가깝고, 입체감을 강조한 구름과 용무늬에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밑면에는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해 97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의 머리가 험상궂은 용의 머리에 가깝고,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점, 비머리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특히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의 번잡한 장식 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진전되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006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