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국보,보물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6. 20. 15:06

  성주사지에서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뒤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탑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석탑이다. 성주사는 구체적 유래는 전하고 있지 않지만 백제 땅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그 배치구조가 특이하며 이외에도 또 다른 3기의 탑과 석비, 귀부, 석축, 초석 등 많은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탑을 받치고 있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되어 있으며, 기단 맨윗돌에 1층 탑몸돌을 괴기 위한 별도의 받침돌을 두어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3층을 이루는 탑신(塔身)의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짐승얼굴모양의 고리 1쌍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네 귀퉁이는 경쾌하게 약간 치켜올라갔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지 않고, 장식을 받쳐주던 네모난 받침돌(노반)만 놓여 있다. 1971년 해체 ·수리 당시 1층 몸돌에서 네모난 사리공을 발견하였으나 그 안에 향나무 썩은 가루와 먼지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함께 위치한 다른 두 탑에 비해 너비가 넓어 장중한 느낌이 드는 탑으로, 기단이나 지붕돌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9세기에 조성(造成)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석탑(石塔)이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초층 탑신(塔身) 밑에 별도의 받침돌을 받친 것은 고려석탑(高麗石塔)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초층탑신 남쪽 면에는 자물쇠를 채운 문짝(門扉)을 조각(彫刻)하였다. 각층의 옥개석(屋蓋石)에는 4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추녀끝이 경쾌하고 아름답게 약간 치켜 들려 있다. 탑 꼭대기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지고 노반(露盤)만 남아 있는데 탑의 높이는 4m이다. 이 절에 동서로 건립된 3기의 석탑은 사적기(史蹟記)에 정광(定光), 약사(藥師), 가섭(迦葉) 3여래(三如來)의 사리탑(舍利塔)이라 전한다.(출처 : 문화재청)

탑 주변에 장식을 매달았던 흔적인 구멍이 있음.

 

 

문화재청에는 주소가 성주리73번지인데 현장에는 성주리74번지네요.

 

 

왼쪽에서 3번째 탑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0470000,34&queryText=((V_KDCD=12)) <and>(((V_NO >=47)<and>(V_NO <=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