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화성 남양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3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8. 25. 14:10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남양향교는 조선 태조 6년(1397)에 음덕리 면역곡동에 처음 세웠다고 하며, 고종 10년(1873)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도 이 때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앞쪽에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뒤쪽으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출입구 구실을 하는 내삼문·외삼문, 제사를 준비하는 수복실 등이 있다. 옮겨 지을 당시에는 모든 건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동무·서무·명륜당이 없어졌다가 후에 명륜당만 새로 지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객사처럼 좌우에 날개채를 붙인 평면으로 구성되어 매우 독특하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이며, 동재와 서재는 기숙사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원래는 음덕리 면역곡동에 있었다. 조선 초기인 태조(太祖) 6년(1397)에 처음 세웠다고 하며 고종(高宗) 10년(1873)에 이 곳으로 옮겨 왔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이 때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비봉산 남쪽의 국사봉 오른편에 비교적 급한 경사지에 자리잡았다. 터를 지형 조건에 맞추어 상하 두 단으로 크게 나누고 좌우로 길게 조성하였다. 각각의 건물은 대성전(大成殿) 구역을 위쪽에 두고 명륜당(明倫堂) 구역을 아래쪽에 두어 수직적 위계를 지키면서도 전면이 폐쇄되지 않도록 좌우로 축을 비켜 배치함으로써 대지 조건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와 함께 명륜당 구역에서는 외삼문을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치게 놓고 서재(西齋)를 명륜당에서 띄어 놓으면서 동재(東齋)는 명륜당 가깝게 붙여 놓아 자연스럽게 내삼문으로 움직임을 유도하였다. 이전할 당시에는 대성전, 동·서무, 동·서재, 내·외삼문, 명륜당, 수복실(제사 준비를 하는 방),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나 동·서무, 명륜당 등이 멸실되었다가 1989년에 명륜당만 중건되었다. 명륜당은 객사처럼 좌우에 날개채를 붙인 평면으로 구성되어 매우 독특하다.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5성(聖) 외에 우리나라의 18현(賢)을 모시고 매년 8월 27일에 제사를 올린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0340000,31&queryText=((V_KDCD=31)) <and>(((V_NO >=34)<and>(V_NO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