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여주 명성황후 생가(경기도 유형문화재4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9. 29. 20:30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이 건물은 조선(朝鮮) 고종황제(高宗皇帝)(1863∼1907, 재위)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나서 8세까지 살던 집인데, 숙종(肅宗) 13년(1687)에 건립된 것이다. 명성황후는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치록(閔致祿)의 딸로 철종(哲宗) 2년(1851)에 나서 16세 때 고종의 비로 책봉(冊封)된 후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일인에 의해 시해(弑害)될 때까지 개화(開化)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정에 참여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능(陵)은 청량리에 있었는데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昇遐)하자 금곡(金谷)의 홍릉(洪陵)으로 합장했다. 건립 당시에 있었던 이 집의 행랑채는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안채는 1975년과 1976년에 중수한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460000,31&queryText=((V_KDCD=21))%20<and>(((V_NO%20>=46)<and>(V_NO%20<=%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