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안성 영창대군 묘(경기도 기념물75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0. 5. 22:59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 태어난 영창대군(1606∼1614)의 묘소이다. 선조의 14명의 아들 중 유일하게 왕비의 소생으로 선조의 특별한 총애와 소북파(小北派)의 지지를 받으며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 대신 세자로 책봉될 가능성이 많았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광해군 즉위 후 소양강을 무대로 시와 술을 즐기던 서양갑·박응서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하여 ‘7서의 옥’이 일어났다. 그러자 광해군을 지지하던 대북파(大北派) 이이첨 등은 이들로 하여금 영창대군 추대음모를 거짓 진술케 함으로써 영창대군을 평민으로 강등시켜 유배시켰다. 영창대군은 그 뒤 유배지에서 강화부사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직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남한산성 아래에 안장되었다가 성남시 개발계획에 의해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봉분 아랫부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둘레석을 둘렀으며, 그 앞에는 상석·향로석·묘비·동자석 등이 있다.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영창대군은 선조의 아들 중 정비인 인목왕후가 낳은 아들인데 선조가 갑작기 죽어 먼저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왕위에 위협을 줄수 있는 인물이라 하여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함. 아버지인 선조가 오래 살던지 아님 왕자로 태어나시지 말던지....

 

 

   영창대군이 태어난 해가 문화재청과 현장 안내판이 다르네요. 또 영창대군의 묘 주소가 문화재청에 있는 주소(고은리 산24-5 )와 다르네요....문화재청에 있는 것이 옳은 것 같네요.

 

 

 

 

 2012. 11월에 다기 찾아 가보니 안내판이 이렇게 바뀌었네요.

 

 

장호원쪽에서 통합검색으로 찾아 가는데 이곳으로 안내를. 전에 올 때는 이 도로가 없었는데.

 

 

뒤돌아 본 모습.

 

 

결론부터 말하면 영창대군묘는 횡단보도라는 표지판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내비는 3시방향으로 가라고 안내를... 내비가 가라는 대로 가보았다.

 

 

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서 보니 안내판이 있다.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전에 왔었지만 길이 이상하다.

 

 

내비가 가리키는데로 오른쪽길로 가보아도 헛고생.

 

 

영창대군묘는 지하도로를 되돌아가 우측에 있다.

 

 

큰 도로를 가기전에 우측으로 올라가야 있다.

 

 

 

 

바닥에 돌이 깔려있는 길로 가면

 

 

묘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내비가 잘못 안내하여 고생을 했다. 안성 일죽면 고은리 산24-5로 찾아가시는 것이...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750000,31&queryText=((V_KDCD=23))%20<and>(((V_NO%20>=75)<and>(V_NO%20<=%2075)))

 

 

영창대군기사 :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564974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22487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