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후기 사람인 안석 선생과 그의 세 아들이 쓰던 우물이다. 밀직공 안석 선생은 호장(戶長)에 추대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그의 세아들 축(軸)·보(輔)·집(輯)을 훌륭히 키웠는데, 이 때 함께 사용하던 우물이라 한다. 우물은 화강암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3단 조립한 형태이다. 그 뒷편으로는 비각을 세워 놓았는데, 그 안에는 조선 인종 원년(1545)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네 분의 덕을 기리고자 세운 ‘4현정(四賢井)’비가 남아 있다. 이곳은 고려말(高麗末) 이곳에 거주한 밀직공(密直公) 안석(安碩)이 호장(戶長)에 제수(除授)되었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향리(鄕里)에 묻혀 세 아들 문정공(文正公) 축(軸), 문경공(文敬公) 보(輔), 재주공(祭酒公) 집(輯)을 훌륭히 키우면서 함께 쓰던 우물이라 한다. 조선(朝鮮) 인종(仁宗) 원년(元年)(1545)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이곳에 사현정이라 비(碑)를 세우고 네 분의 덕(德)을 가리게 하였으며, 그후 인조(仁祖) 14년(1636)에 순원군(順原君) 안응창(安應昌)이 현존(現存)하는 비각(碑閣)내의 비명(碑銘)을 쓰고 중수(重修)하였고, 순조(純祖) 21년(1821)에 안동영장(安東營長) 안성연(安性淵)이 현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690000,37&queryText=((V_KDCD=23)) <and>(((V_NO >=69)<and>(V_NO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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