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공주 연평부원군 신도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8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2. 31. 11:47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놓은 비를 말한다.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귀(1557∼1633) 선생을 기리고 있다. 이귀는 이이·성혼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군인을 모집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힘썼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에 오르게 하는 인조반정때 공을 세워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그후 연평부원군에 봉해졌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한돌로 이루어진 비몸과 머릿돌을 세웠다. 거북받침돌은 머리를 수평으로 내밀고 있으며,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과 구름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나타내었다. 비문은 조익이 글을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명칭은 여우징이 썼다.(출처 : 문화재청)

 

  정몽주의 손녀 사위인 이석형(李石亨)의 5대손인 이귀는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정사공신1등에 연평부원군이 되었다. 이귀의 아들은 정사공신 2등인 이시백(李時白, 후일 영의정), 이시방(李時昉, 후일 판의금부사)이다. 정몽주와 이석형의 묘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있는데 세종 때 세 번이나 장원 급제한 이석형의 묘가 포은 정몽주의 묘 옆에 위치한 연유는 포은의 묘를 영천으로 이장할 때 바람에 날린 명정이 떨어진 곳은 지금 이석형의 묏자리였다. 포은의 손녀인 이석형의 부인이 이곳이 명당이란 말을 듣고 친정집보다는 시댁 가문을 일으키려고 밤새 이곳에 물을 길어다 부었다. 다음날 포은을 모시려고 보니 물이 가득 차 있어 할 수 없이 옆 언덕에 묘를 썼고, 뒤에 그 자리에는 남편인 이석형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귀는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공신이됨.

  이이,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 광해군의 난정을 개탄하고, 김류(김여물의 아들), 신경진(신립의 아들, 인조의 백부 신성군과 처남매부사이), 최명길, 김자점(이귀의 사돈) 등과 함께 반정, 광해군을 폐하고 선조의 손자인 능양군 종(倧)을 왕으로 추대.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김류(후일 좌의정), 신경진(후일 영의정), 이서(후일 판의금부사겸 병조판서), 최명길(후일 영의정), 구굉(후일 각조 판서), 김자점(후일 영의정), 심기원(후일 좌의정) 등과 함께 정사공신 1등에 책록, 연평부원군에 봉해짐. 남한산성의 수축, 호패법의 실시, 무사의 양성, 국방을 충실히 할 것 등을 건의 함.

 

정몽주 묘(경기도 기념물1호) : http://blog.daum.net/dbsqkqh/1610

이석형 묘(경기도 기념물171호) : http://blog.daum.net/dbsqkqh/1603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 마을 입구에 있는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890000,34&queryText=((V_KDCD=21))%20<and>(((V_NO%20>=89)<and>(V_NO%20<=%2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