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공주 숭선군 묘(충청남도 기념물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 2. 14:07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의 다섯째 아들 숭선군의 묘소이다. 군의 이름은 징(徵)이며, 시호는 효경(孝敬)이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를 따라 공주(公州)로 잠시 피신한 일이 있었는데, 궁으로 돌아와서도 항상 공주를 그리워하더니 숙종 16년(1690)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都城)에서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었고 그 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져 만들어졌다. 묘 주위에는 ㄷ자형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고 좌우에는 무인석과 문인석이 1쌍씩 세워져 있다. 봉분 아랫부분은 화강석으로 둘레석을 둘렀으며, 묘비에 쓰여진 기록을 통해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로 영조 42년(1766)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숭선군(崇善君)은 조선(朝鮮) 제16대 인조(仁祖)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부왕(父王)을 따라 공주(公州)로 잠시 피해 와 있었던 인연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묘비(墓碑)에 보면 이 무덤은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合葬墓)이며 무덤이 만들어진 해는 영조(英祖) 42년(1766)임을 알 수 있다. 숭선군은 숙종(肅宗) 16년(1690)에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였으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都城)의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고, 그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의 주의를 ㄷ자형으로 담장을 쌓고 무덤 앞으로 상석(床石), 장명등(長明燈), 문·무인석(文·武人石), 망주석(望柱石)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의 둘레는 18.6m, 높이는 2m이다.(출처 : 문화재청)

 

 

 

   이괄의 난때 인조 따라 공주에 왔다가 맘에 들었던 공주에 묻어 달라 유언을 했던 인조의 다섯째 아들 징.....그러나 왕족이라 도성 멀리 90리밖에는 갈 수 없다 하여 뒤늦게 공주에 오신분. 근처에  신도비를 만들려다 멈춘 큰 거북이(충청남도 유형문화재61호인 오룡리 귀부)만 논가에 있음.

(http://blog.daum.net/dbsqkqh/1523)

 

 

 

오른쪽 논가운데 숭선군 신도비 만들려다 만 거북이 철책이 보임

 

 

숭선군 묘앞에 있는 배롱나무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060000,34&queryText=((V_KDCD=23))%20<and>(((V_NO%20>=6)<and>(V_NO%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