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서산객사(충청남도 유형문화재13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3. 12. 18:41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이 머물렀던 좌우 익실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객사가 처음 세워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산 시청 내에 남아 있는 외동헌과 관아문의 기법과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같이 세워진 건물로 여겨진다. 본래 서산군 관아 내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남향하여 세워진 이 건물은 앞면 8칸·옆면 2칸의 규모로, 잘 다듬어진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졌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산객사는 1910년에 임금의 위패를 충청남도에 기증하고 서산읍사무소, 서산농촌지도소, 서산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1994년에 전문학계의 고증을 받아 복원·정비하였다. 서산객사(瑞山客舍)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서산군 관아내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객사(客舍)의 중앙정당(中央正堂)에 국왕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삭망((朔望), 1일, 15일)에 대소관원(大小官員)들이 왕의 위패(位牌)에 배례(拜禮)를 올리던 곳이었고 양편 익실(翼室)은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방(房)이다. 남향하여 건립된 이 건물은 정면 8칸 측면 2칸의 규모(規模)의 일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잘 다듬어진 화강석 기단(基壇)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건축양식(建築樣式)은 무출목 초익공(無出目 初翼工) 계통이며 창방(昌枋)위에 놓여진 장화반(長花盤)은 매우 화려하며 겹처마 팔작(八作) 지붕집이다. 서산객사(瑞山客舍)는 융희(隆熙) 4년(1910)에 궐패(闕牌)를 충청남도에 봉납(奉納)하고 객사(客舍)의 용도가 상실되어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그후 서산읍사무소, 서산농촌지도소, 서산문화원등으로 사용되다가 1994년 학계의 고증을 받아 1994년부터 '95년까지 정비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1370000,34&queryText=(`서산객사`)<in>z_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