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지정예고

백범 김구관련유물-등록예고

천지연미소바위 2012. 6. 28. 13:41

공 고 (안)

 

문화재청 공고 제2009 - 81호

 

문화재보호법 제47조, 같은 법 시행규칙 제2조 제4항 및 제42조에 따라 백범 김구 관련 유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문화재 등록을 예고합니다.

 

2009. 4. 15.

 

문 화 재 청 장

 

1. 공고명 : 문화재 등록 예고

 

2. 등록예고 문화재

 

가. 등록예고 내용

연번

문화재 명칭

수량

소재지(소장처)

소유자

비고

1

백범 김구 혈의(血衣) 일괄

8종 10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김 신

(서울 용산)

 

2

백범 김구 인장 金九之印

1과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3

백범 김구 인장 金九

1과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김 신

(서울 용산)

 

4

백범 김구 낙관

3과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김 신

(서울 용산)

 

5

백범 김구 회중시계

1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김 신

(서울 용산)

 

6

백범 김구 유묵 韓美親善平等互助

1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사)백범김구선기념사업협회

 

7

백범 김구 유묵 愼其獨

1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김 신

(서울 용산)

 

8

백범 김구 유묵 思無邪

1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김 신

(서울 용산)

 

 

나. 등록사유

1) 백범 김구 혈의(血衣) 일괄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1949.6.26 경교장에서 총격으로 서거할 당시 입고 있었던 의복류로 조끼적삼(1점), 저고리(1점), 조끼(1점), 개량속고의(1점), 바지(1점), 대님(2점), 양말(2점) 및 개량토시(1점) 등 일괄 8종 10점임. 혈흔이 남아 있으며 특히 조끼적삼과 저고리에는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명해주는 유물로 역사적․상징적 가치가 매우 큼

ㅇ 혈흔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조끼적삼과 저고리 및 조끼는 왼쪽 어깨부위가 절개된 상태이며, 개량속고의(전통적인 袴衣와 달리 개량된 속바지)와 바지 및 대님은 상의와 마찬가지로 명주로 만들어짐. 그 외 갈색 양말과 개량토시(전통적인 吐手와 달리 옷소매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근대기부터 사용한 덧소매형 토시)가 있으며, 조끼에 달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은단추도 별도 보관되어 있음

2) 백범 김구 인장 金九之印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사용하던 사인(私印)으로 황색 옥석(玉石)에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선생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1940년쯤부터 1945년 11월 귀국시까지 주로 사용되었으며, 중국 정부의 주요 인사에게 보낸 서한 대부분에 이 인장이 찍혀있어 자료적 가치가 큼

3) 백범 김구 인장 金九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사용하던 사인(私印)으로 황색 계혈석(鷄血石)에 해표(海豹)가 새겨져 있고 광복 이후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1946년경에 김상정(金商玎), 정인보(鄭寅普)에게 보낸 명함과 안창호(安昌浩)에게 보낸 사진 등에 이 인장이 찍혀있어 자료적 가치가 큼

4) 백범 김구 낙관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사용하던 사인(私印)으로 [寬和]․[金九之印]․[白凡] 3과로 구성되는 낙관(落款) 세트로서 각각 두인(頭印), 성명인(姓名印), 아호인(雅號印)임. 검은 옥석(玉石)에 연잎무늬가 새겨져 있고 ‘惺齋作’, ‘丙戌仲春惺齋仿古’라는 측관(側款, 인장의 옆면에 새긴 문자)이 있어 근대기의 유명한 전각가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1875~1953)이 1946년 봄에 새긴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김구 선생이 주로 글씨를 쓸 때 사용했던 것으로 1945년 11월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에 쓴 유묵(遺墨)의 대부분에 이 인장이 찍혀 있음

5) 백범 김구 회중시계

ㅇ 윤봉길(1908~1932)의사가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1932.4.26) 직후에 구입하여 간직하다 중국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 김구선생의 시계와 맞바꾼 것으로, 윤봉길의사의 유품이면서 김구선생의 유품이기도 하며, 거사에 임한 두 분의 애국․독립정신을 헤아릴만한 유물로서 상징적 가치가 큼

ㅇ 이 금색 회중시계(懷中時計)는 Waltham사에서 만든 것으로 시계줄 끝에 작은 나침반이 달려 있으며, 하트형의 꽃무늬가 은도금되어 있는 덮개를 열면 12방위가 한문으로 표시되어 있음

6) 백범 김구 유묵 韓美親善平等互助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1949년 1월에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 헨더슨(Gregory Henderson, 1922~1988)에게 써 준 붓글씨임. 미군정과 대립하던 당시 해방정국에서 선생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젊은 헨더슨에게 여러 점의 휘호를 선물하였음. 그 중 ‘韓美親善平等互助’는 당시 시대상황과 선생의 통일조국을 열망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며 ‘한국과 미국이 친선하고 평등하게 서로 돕자’라는 의미로 한미외교관계에 있어 상징적 가치가 큼

ㅇ 헨더슨은 1948~1950, 1958~1963년까지 우리나라에 체류하며 韓大善이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은 인물로, 우리 정계와 학계,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도자기 등 진귀한 유물을 수집하였으며, 이 유묵(遺墨)은 헨더슨의 부인이 2002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에 기증한 것임

7) 백범 김구 유묵 愼其獨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쓴 붓글씨로 1949.6.26 서거 당시 책상 위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중 하나이며, 가장자리에 혈흔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명해주는 유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큼

ㅇ 선생은 1932년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 이후 본격적으로 붓글씨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유묵(遺墨)은 150여점에 달하는데, ‘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는 愼其獨의 의미가 당시 선생이 처한 상황과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상징적 가치가 큼

8) 백범 김구 유묵 思無邪

ㅇ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이 쓴 붓글씨로 1949.6.26 서거 당시 책상 위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중 하나이며, 가장자리에 혈흔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명해주는 유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큼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경구인 ‘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라는 뜻의 思無邪는 당시 선생이 처한 상황과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상징적 가치가 큼

 

3. 의견제출

위 등록예고 사항에 대하여 의견이 있으신 기관․단체 또는 개인은 공고일부터 30일 이내에 다음 사항을 기재한 의견서를 문화재청으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 등록예고사항에 관한 의견(찬․반 의견과 그 사유)

나. 성명(단체의 경우 단체명과 대표자명), 주소 및 전화번호

다. 의견 제출방법 : 우편, 팩스 등을 통해 제출하거나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새소식>문화재지정예고)에 의견 등록

라. 연 락 처

ㅇ 전 화 : (042)481-4888, 4892

ㅇ 팩 스 : (042)481-4899

ㅇ 주 소 : 대전광역시 서구 선사로 139번지 정부대전청사 1동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우 30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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